[투데이 窓]글로벌 시대 필수 성장전략 '크로스보더 M&A'

머니투데이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2024.08.29 02:03
글자크기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같은 내용도 영어로 써놓으면 뭔가 다른 느낌이다. 필자는 KDB산업은행 뉴욕지점장 시절 맨해튼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에 가끔 산책을 갔는데 우리 직원들끼리는 센트럴파크라는 말 대신 중앙공원에 산책 간다고 말하곤 했다. 센트럴파크와 중앙공원은 어감이 많이 다르다. 그래도 센트럴파크를 중앙공원이라고 부른 것이 낯선 뉴욕생활을 좀 더 친근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

중앙공원과 센트럴파크처럼 크로스보더(Cross-border) M&A라고 하니까 뭔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별거 없다. 요즘처럼 글로벌한 세상에서 거래 당사자들이 모두 내국인이면 국내 기업간 M&A인 도메스틱(Domestic) M&A고, 거래 당사자들의 국적이 달라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간에 국경을 넘어 이뤄지는 M&A면 크로스보더 M&A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크로스보더 M&A는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인해 본격화했고 이때 크로스보더 M&A는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를 의미하는 인바운드 M&A였다. 그 당시 한국은 외화부채 상환자금을 마련하느라 해외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고 해외 투자자들은 자산가격이 폭락한 한국 기업들의 주식과 부동산을 쓸어담았다. 외국인의 국내 상장주식 보유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2000년 초반 40%를 넘어섰고 200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었으며 2023년 말 기준으로는 28% 수준으로 낮아졌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몇 차례 중요한 크로스보더 M&A 거래가 있었다. 1995년 LG전자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TV회사 제니스일렉트로닉스(Zenith Electronics) 지분 58%를 약 3억5000만달러에 인수했고 제니스의 브랜드를 활용해 미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전략을 펼쳤다. 인수 후 LG전자는 기술력 강화와 경영개선을 시도했지만 시장 경쟁에서 계속 밀리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제니스는 1999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는 LG전자의 첫 대규모 해외 M&A 실패사례로 기록됐다.



삼성전자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는 1994년 미국 PC 제조업체 AST리서치(AST Research Inc.) 지분 40%를 약 3억7000만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컴퓨터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투자했다. 하지만 AST리서치는 인수 후에도 계속된 경영부진과 시장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었고 삼성전자는 결국 1999년 폐업했다.

아마도 한국의 많은 기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해외 M&A 실패사례를 보며 크로스보더 M&A를 아주 어렵고 위험한 일로 인식하게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를 극복하며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수익성 등은 많이 개선됐고 한국 기업들도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아웃바운드 크로스보더 M&A에 나섰다. 2000년 이후 국내 기업의 대규모 해외 기업 인수사례로는 2007년 말 두산그룹의 미국 건설 중장비회사 밥캣 인수(51억달러), 2016년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80억달러), 그리고 2021년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90억달러) 등이 있다.


크로스보더 M&A는 도메스틱 M&A보다 몇 배 어렵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필수불가결한 성장전략이다. 깨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계속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나이, 국적, 성별, 공채여부 등을 따지지 않는 유연한 고용문화와 함께 이렇게 육성한 인재들을 잘 활용해 많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아닌 낯선 해외에서 익숙해지기까지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