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위 조세심판원 심리?…"증여했는데 증여세 못 물어"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4.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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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심판원, 편법 탈세 창구" 비판…해외도피사범 검거 시급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사진=머니투데이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조세심판원이 편법 탈세의 창구가 됐다."

해외도피 중 1400억원대 세금과 이자를 돌려받게 된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사건을 두고 22일 한 법조계 인사가 내놓은 평이다. 세무당국의 과세 착오에 대해 납세자가 좀더 손쉽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조세심판제도가 범죄자의 탈세 창구로 악용됐다는 것이다.

과세당국은 조세심판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국세청이 더이상 선 전 회장에게 증여세를 부과할 방법이 없다. 이 인사는 "사실상 증여가 이뤄졌는데 증여세는 부과할 수 없게 된 것"이라며 "세금 기술자들이 제도의 맹점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본지 23일자 1면 '[단독]해외도피범에 1400억 물어준 국세청' 참조

사건은 하이마트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선 전 회장이 회사에 1700억원대 손해를 끼친 횡령·배임 혐의를 들여다보던 검찰이 2012년 편법증여 정황을 포착해 국세청에 조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국세청은 선 전 회장이 하이마트 매각 도중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주식을 본인 명의가 아닌 두 자녀의 명의로 취득한 것을 자녀의 명의만 빌린 명의신탁에 의한 증여로 보고 같은 해 선 전 회장의 두 자녀에게 증여세로 총 1376억원을 부과했다.



선 전 회장이 증여세 불복심판을 청구하자 조세심판원은 2014년 심리 끝에 국세청의 증여세 부과가 명의신탁에 의한 증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세금 취소 결정을 내렸다. 국세청은 이 결정에 따라 증여세 명목을 현금증여로 수정해 같은 액수의 증여세를 다시 부과했고 선 전 회장은 법원에 소송을 냈다.

2018년 대법원은 조세심판원의 판단과 달리 선 전 회장의 행위가 현금증여가 아니라고 확정 판결했다. 국세청이 처음 부과했던대로 명의신탁에 의한 증여가 맞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 판결이다.

국세청은 대법원 판결 5년만인 지난해 4월 선 전 회장의 두 자녀에게 명의신탁에 따른 증여세 명목으로 1376억원을 재부과했다. 선 전 회장은 2014년 조세심판원 결정을 근거로 조세심판원에 다시 불복심판을 청구했고 조세심판원은 올 2월부터 심리를 시작해 4개여월여만에 또 선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세무업계에서는 조세심판원의 2014년 판단을 사실상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조세심판원이 기존 판단을 고수하면서 증여세 부과를 사실상 원천차단한 것을 두고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상임심판관과 외부위원 2명 등 3명이 수천억원의 세금 불복 심리를 담당하는 조세심판원 구조가 '세피아(세무공무원과 마피아의 합성어) 밀실행정 관행'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사건은 당초 박춘호 상임심판관이 주심으로 심리하다 퇴임하면서 류양훈 상임심판관이 경북대 교수 등 외부 심사위원 2명과 함께 사건을 심리해 2대1 의견으로 세금 취소를 결정한 뒤 황정훈 조세심판원장이 결재하면서 최종 확정됐다. 논란이 있는 사건을 합동회의로 회부하지 않고 3인 심리로 서둘러 마무리한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의 징역형 확정 판결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에 대해 사실상 손놓고 있는 사법당국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세무당국의 소송역량 부족과 조세심판제도상의 맹점, 사법당국의 해외도피사범 방치라는 3박자가 맞물린 결과"라며 "사법당국이 해외도피사범 검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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