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33'…옛것 품은 강화도 폐공장, 외국인도 찾는 명소 됐다

머니투데이 강화(인천)=김온유 기자, 이창명 기자 2024.08.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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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노믹스가 바꾸는 지역소멸] ⑥인천 강화

편집자주 흉물 리모델링·님비(기피·혐오)시설 유치와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Innovative Ideas)'를 통해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I-노믹스(역발상·Inverse concept+경제·Economics)'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비영리단체(NGO) 등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역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재래시장과 빈집, 발길 끊긴 탄광촌과 교도소, 외면받는 지역축제 등이 전국적인 핫플(명소)로 떠오르면서 지방소멸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직접 이런 사례를 발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카메라 켜면 그곳이 사진 명당…변신한 '폐공장', 강화도 살리는 효자로[르포]
조양방직 내부의 모습/사진=김온유 기자조양방직 내부의 모습/사진=김온유 기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선조들의 역사가 녹아든 방직공장이 지역소멸을 막을 대안의 하나로 떠올랐다. 인천 강화읍 신문리에 위치한 조양방직이 그 주인공이다. 갈라지고 떨어져나간 시멘트 벽과 천장 목재 트러스 구조 등 과거 폐공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조양방직은 1933년 민족 자본으로 설립한 최초의 인견공장으로 약 60여년 만인 2017년 카페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과거 방직공장 당시의 시설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소품들로 내부를 가득 채웠다. 공장 작업테이블 등을 카페 탁자로 활용하거나 염색조를 어항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특히 십수년은 지난 것처럼 보이는 라디오와 오르간, 실제로 프랑스 미용실에서 쓰던 의자 등 오래된 골동품들은 고급스런 인테리어 장식이자 전시품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철 조양방직 대표도 "조양방직의 모든 공간과 소품이 하나의 미술품"이라고 소개했다. 단순히 폐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 아닌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 보고 손을 봤다는 설명이다. 폐허나 다름없던 '조양방직'이 강화도를 단숨에 인천 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한 이유다.

휴일이 아닌 평일(월요일)인데도 약 5000㎡(1500평) 규모의 조양방직 내부에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푹푹찌는 날씨였지만 야외에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건물 외부에는 어디든 포토존이 될 수 있게 폐버스와 전화부스, 트렉터 등이 배치돼 있었다. 카페 내부에도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가득했다.



조양방직은 이미 글로벌 명소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이날도 카페 바로 앞에 중국인이 탄 단체 관광버스가 주차돼 있었다. 조양방직 관계자는 "외국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귀띔했다.

'응답하라 1933'…옛것 품은 강화도 폐공장, 외국인도 찾는 명소 됐다
수도권이지만 경기 연천·가평과 인천 옹진 등과 함께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강화군은 조양방직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3월 한달 기준으로 강화군의 생활인구는 55만6000여명이다. 주민등록인구 6만8000여명을 제외하면 체류인구가 무려 48만5000여명에 달한다. 생활인구는 등록인구와 시·군·구에 1일 동안 머무른 시간의 총합이 3시간 이상인 경우가 월 1회 이상인 체류인구로 구성되는 새로운 인구개념이다.

조양방직에 찾아오는 고객들은 주말 기준 하루 4000여명, 평일 기준 1000여명이다. 한달간 약 4만5000여명이 다녀가는 셈이다. 사실상 조양방직이 강화군 체류인구의 10%를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외국인 방문객까지 더하면 그 비중은 더 커진다.



조양방직이 단순히 인구를 끌어들이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양방직을 시작으로 인근에 강화군 직물사업을 대표했던 또다른 동광직물이 지난해 문화공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또 영혼을 구원하고 육신을 치료하는 병원이라는 뜻의 구세의원도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기념품 판매장으로 꾸며졌다. 1960년대까지 진료를 보던 의원이었지만 이후에는 개인 주택으로 바뀐 곳이다. 아울러 강화군의 대표 관광지인 소창체험관도 여전히 손수건 제작 등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강화군청 관계자는 "2018년 조양방직을 오픈할 때 반신반의 했지만 결과적으로 조양방직을 중심으로 강화읍 원도심에서 즐길거리를 연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는 계기가 됐다"며 "동광직물과 구세의원 등이 그 사례로 이같은 사업들이 강화군 도시재생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양방직 내부 모습/사진=김온유 기자조양방직 내부 모습/사진=김온유 기자
건물 헐고 고층 올려야 이득?…'한국판 테이트 모던' 만든 이 사람 소신
-이용철 조양방직 대표 인터뷰



이용철 조양방직 대표/사진=이창명 기자이용철 조양방직 대표/사진=이창명 기자
조선시대 때부터 직물산업의 중심지였던 강화도엔 1936년 자본금 50만원에 조양방직이란 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관련 설비를 갖춘 공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직물산업 중심지가 대구로 옮겨가면서 강화도는 빠르게 몰락했다. 조양방직도 1958년 폐업했다. 직물공장도 반세기 넘게 흉물로 방치돼있다 2017년 한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서 이젠 지역을 대표하는 휴식공간이자 랜드마크로 자리를 잡았다.

이 모든 성과를 만들어낸 이용철 조양방직 대표(59세)를 강화도에서 직접 만났다. 20년 가까이 서울 인사동에서 고미술품 등을 다뤄온 그는 우연히 조양방직을 소개받고 한눈에 반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을 벗어난 너무 특별한 곳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가 조양방직을 처음 마주하고 느낀 매력에 이젠 수많은 사람들도 공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조양방직 자체가 하나의 미술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저랑 마찬가지로 내부 구조물의 아름다움, 이 안을 채운 소품들을 보고 오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2018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갈수록 찾아오는 손님들이 급증하고 있다. 어느덧 직원수는 30명을 넘어섰다. 이날도 수백개가 넘는 좌석이 꽉 차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올해부턴 중국 등에서 외국인 손님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 외국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 같고, 올해 유난히 자주 오는 것 같다"면서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경로로 조양방직을 알아봐주시고, 버스 등을 대관해 단체로 오신다"고 설명했다.

조양방직 내부/사진=이창명 기자조양방직 내부/사진=이창명 기자
실제로 폐공장의 성공적인 변신을 경험한 젊은층은 조양방직을 한국의 테이트 모던으로 소개하고 있다. 테이트 모던은 영국 도심에 방치돼있던 화력발전소를 현대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 성공한 대표 사례로 유명하다. 이렇게 전국에 입소문이 나면서 폐공장이나 폐건물 같은 골칫거리를 해결하고 싶은 지방자치단체들까지 조양방직을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양방직 수준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은 없다. 이 대표는 "조양방직은 재방문율이 다른 지역카페들보다 높은 편"이라며 "방문객이 올 때마다 달라지는 느낌을 받고, 우리도 그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자주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도시에선 도시재생 사업이 비효율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대표는 지역소멸 문제가 심각한 지방에선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울에선 낡은 건물을 방치하기보단 허문 뒤 고층건물을 올리는 효율적 사업이 가능하고, 투자도 잘 이뤄진다"며 "반면 강화도 같은 지역은 현실적으로 건물을 헐고 높은 건물을 새로 올릴 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곧 경쟁력이자 먹거리"라고 단언했다.



지역사회에서도 조양방직의 기여도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조양방직 덕분에 강화군에 석모도 등 다른 마을도 돌아보신단 분들도 있고, 인구 유입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해줘서 고맙단 말도 들었다"며 "아직 모자라지만 조금씩 동네에 변화가 생기고 있고, 몇년 안에 서울 익선동처럼 큰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조양방직은 현재도 변신이 진행 중이고, 끊임없이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며 "조양방직을 통해 강화도의 신문리란 마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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