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임종룡과 '우리' 증권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2024.07.30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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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시간만 이사들께 프레젠테이션(설명) 할 시간을 달라." 2013년 임종룡 당시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우리투자증권 인수의지를 공개적으로 피력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농협중앙회 이사들이 인수를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을 찾아가 이사들을 직접 만나 설득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최 회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임 회장은 이사회에 들어가 우리투자증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인수할 여건은 되는지, 인수하면 시너지나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농협금융과 농협중앙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등을 조목조목 설명해 결국 이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 회장에게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면 (농협에서) 아무도 내려보내지 말아달라"는 당돌한(?) 요청을 했다. "증권업은 은행하고 다르다. 사람(임직원)이 전부다. 증권맨들은 이해득실 계산이 훨씬 빠르다. 농협을 주인으로 맞는 것에 대해 네거티브한 분위기 속에서 경영진을 내려보내면 인재이탈이 불 보듯 뻔하다." 설득을 이어가자 최 회장은 같이 방패막이가 돼주기로 약속했다.

임 회장은 인수가 확정된 뒤 우리투자증권도 직접 찾아갔다. 직원들에게 인수 이후 청사진을 공개하면서 제일 먼저 "관리임원 1명 빼고는 농협 쪽에서 아무도 내려보내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거취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임원과 간부들을 안심시켰다. 특히 당시 IB(투자은행) 쪽 키맨이던 정영채 전무를 만나 "딴마음 품지 말고 나중에 여기서 사장을 하라"고 다독였다. 그렇게 우리투자증권은 NH투자증권이란 새 이름으로 농협과 한식구가 됐다. 정영채는 실제로 훗날 대표에 올라 NH투자증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임 회장은 우리금융지주를 이끌며 이젠 NH란 이름으로 사라진 '우리투자증권 부활'을 알렸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인가를 의결하면서 우리투자증권 출범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포스증권 인수가 최선이 아닌 차선에 가깝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승부사' 기질이 있는 임 회장은 조급해하지 않고 업(業)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더 큰 '승부수'를 찾고 있다. 어차피 임기 중에 모든 것을 이루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인지 "금융은 슬로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의 본원적 강점인 기업금융의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투자증권이란 플랫폼을 기반으로 시너지를 살리면서 좋은 매물이 나오면 또 갖다 붙이면 된다.

행정절차야 그렇다 치고 우리금융의 증권업 진출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인재확보가 필수인데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다. 때마침 미래에셋증권의 세대교체 바람과 함께 옛 대우증권 출신 인재가 속속 모여들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이란 후광을 매개로 좋은 인재들을 찾아다닌다. 누구보다 업을 잘 알기에 전문가를 중용한다는 원칙도 여전하다.


공교롭게도 10여년 전 임종룡에 의해 사라진(?) 우리투자증권과 임종룡에 의해 다시 태어난 우리투자증권. 앞으로 10년 뒤 '우리투자증권'의 역사를 복기할 때 임종룡의 승부수는 어떻게 기록될까.(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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