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유입·증여 지분 '복잡한 셈법'…최·노 사실관계 또 따질 듯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심재현 기자 2024.06.0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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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세기의 이혼, 세기의 재판]②대법원 핵심 쟁점은

비자금 유입·증여 지분 '복잡한 셈법'…최·노 사실관계 또 따질 듯


남은 건 대법원 판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 직후 최 회장 측이 상고 의사를 밝히면서 최종 판결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쟁점은 크게 SK그룹의 성장사에서 노 관장의 기여를 어느 만큼 인정할 수 있느냐와 재산분할 비율이 적정한지다. 노 관장의 기여도는 부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 유입설과도 연결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최 회장의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흘러들어갔고 노 전 대통령이 사돈 그룹인 SK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면서 SK가 빠르게 성장했다고 봤지만 논란이 적잖다.



무엇보다 항소심 재판부가 300억원 유입설을 사실로 보면서도 300억원의 사용처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은 점이 불씨라는 분석이다. 태평양증권·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을 두고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자금이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반면,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이 없고 동양증권 인수 등에는 최종현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동원했다고 맞선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유입설의 사실 여부와 '방패막이' 역할 여부에 대한 논란이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판부는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과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순 여사가 1998년과 1999년 작성한 '선경 300' 메모 등을 거래 증거로 봤다.



300억원 유입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부친의 '기여'를 딸의 기여로 볼 수 있는지, 불법으로 조성된 비자금을 기여로 인정할 수 있는지도 여전한 쟁점이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가사 사건이라 재판부가 자금의 불법성 여부보다는 재산 형성 기여 부분에 주목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고 해도 비자금의 존재와 유입을 인정하면서 재산으로 분할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것은 부친의 불법자금을 딸이 찾아가는 것을 용인하는 결과라는 점에서 따져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중들이 'SK에 노 전 대통령 비자금 흘러들어갔으니 노 전 관장에게 재산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판결문에 불법자금을 기여로 인정한다고 쓰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대법원이 법리를 따지는 곳인 만큼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건들기는 조심스럽겠지만 고심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경영권 지분을 부부공동 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도 대법원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SK 지분가치가 늘어나는 데 경영자와 계열사, 경영자의 배우자 영향을 얼마나 인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SK 지분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영권 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 가정경제공동체와는 뚜렷하게 구분해 관리 운영됐다"며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SK 가치항소심은 반대로 봤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상속받은 경영권 지분의 재산분할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없다.

항소심 재판부가 재산분할 대상을 4조원으로 산정한 것도 대법원이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최 회장이 2018년 친족 23명에게 증여한 1조원 규모의 SK 지분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최 회장 입장에선 '없는 주식'을 다시 나눠야 할 상황이다.



이 같은 쟁점을 바탕으로 대법원이 사실상 '사실심'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법원 상고심은 1·2심 판단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지 살피는 '법률심'이다. 사실 여부보다 법리해석이 제대로 됐느냐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엔 판결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할 대상 재산 규모가 4조원대인 데다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리는 부분이 분명해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대법원이 제출된 증거 중 한쪽 증거의 신빙성을 더 높게 본 부분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채증법칙(증거를 취사선택할 때 지켜야 할 방식) 위반'이란 논리가 동원되고 하급심이 여러 주장 중 배제시킨 증거를 되살리고 싶을 땐 하급심 판결에 '판단 누락'(심리 미진)이 있다고 꾸짖을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산분할 대상과 비율 등에 불복하는 최 회장 측은 상고이유서를 통해 채증법칙 위반과 심리 미진 등을 강력히 주장할 것"이라며 "대법원이 심리 끝에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다면 하급심은 그 취지에 따라 재산분할 비율 등을 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 측 대리인은 지난달 30일 항소심 판결 후 입장문을 통해 "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고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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