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수준 높아진 여행자, 제자리 걸음 여행업

머니투데이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 2024.05.10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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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


얼마 전 길을 걷다 같은 방향으로 걷던 어떤 일행이 제주도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2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었는데 요즘은 제주도 여행을 갈 바에는 차라리 동남아 여행을 가는 게 훨씬 낫다는 이야기였다. 제주도는 항공권만 왕복 40만원이 넘지만 동남아는 20만원이면 가기 때문이란다. 결론은 '이 가격이면 뭐하러 국내 여행을 가느냐, 해외여행을 가지'였다. 그 이야기에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반박하며 이 대화에 끼고 싶었다. 물론 국내 항공료가 아무리 비싸도 그 정도는 아니고 국내 여행이 비싼 것이 아니라 해외여행이 많이 저렴해진 걸 테니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모르는 중년이 오지랖을 떠는 것 같아 말았다.

사실 그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요즘 홈쇼핑을 보거나 다른 매체에서 나오는 여행 관련 광고는 죄다 해외여행이다. 그리고 광고문구를 보면 '제주도보다 싼 여행' '제주도 가는 비용으로 차라리 이곳'이라는 광고문구로 국내 여행과 비교해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상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봐도 제주도 여행 가격보다 저렴한 해외여행비를 보며 제주도 여행이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니 일반 소비자들이 '국내 여행은 비싸'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주도 패키지여행객은 2022년 11월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5월 연휴를 지나고 나서는 역대 최저수치로 떨어졌다. 코로나19로 국내 여행이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지만 잠시뿐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자 국내 여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종식 이후 해외여행 활성화로 점차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해외여행이 급증하며 해외 카드결제 건수가 2년 새 2배로 급증했고 가까운 일본으로 떠난 한국인 여행객은 지난 한 해에만 700만명이 넘는다.

사실 따져보면 국내 여행이 유독 비싼 것도 아니다. 다만 특가로 판매되는 해외여행과 비교하면 유독 비싸다고 느껴진다. 코로나19 전으로 돌아가고 있구나란 생각도 든다. 코로나19 전에는 이렇게 저렴한 해외 패키지여행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니. 이러나저러나 국내 여행은 비싸다는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금액이 비싼 것이 아니라 여행 소비자가 마음으로 이미 비싸다고 인식하는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담당자들 그리고 몇몇 여행사 대표와 함께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한 회의에 1시간 넘게 참석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국내 여행을 활성화할지, 현재 문제점은 무엇인지, 관의 역할과 여행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 국내 여행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회의 내용 중 하나의 희소식은 이제 여행이 일상이 돼버린 우리나라 여행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며 저가여행은 왜 가격이 저렴한지, 고급여행은 왜 비싼지를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실 제주도를 찾는 수요가 줄어 난감하다고는 하지만 일부 최고 호텔급은 어느 해보다 잘되고 있다고 한다. 또 가격과 비례한 가치를 창출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는 국내 패키지 수요는 늘고 있으며 특수목적을 가진 여행수요 또한 매년 증가한다.

국내 여행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격으로 승부하는 국내 여행이 아닌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여행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저렴한 만큼 불편함이 있을 것이고 비싼 만큼 편안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여행비용의 가치다. 할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객을 모으는 것이 아닌 그만한 가치를 담은 여행으로 보답하는 것, 모든 국민이 그런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국내 여행 활성화의 시작이 아닐까.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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