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원료 안 쓰면 수출 못 한다…K-배터리, '무역장벽' 넘으려면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2024.05.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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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RE, 배터리<1회>: 돌아오지 않는 배터리 (上)

편집자주 "건전지를 또 써?" 어린 시절 장난감 미니자동차에 들어갔던 AA 사이즈 충전지는 신세계였습니다. 한번 쓰고 버리던 건전지를 다시 쓸 수 있다니. 지금은 장난감이 아닌 진짜 자동차에서 나온 사용 후 배터리를 다시 쓰는 시대가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전기차가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차'가 되기 위해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과 폐기, 재사용·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주기에 걸친 순환경제 조성이 필수적입니다. 머니투데이는 2022년 '오염의 종결자 K-순환경제' 시리즈를 시작으로 매년 주요 순환경제 분야를 조명하고 올바른 순환경제 모델을 고민해왔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배터리. 앞으로 30년 뒤 600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사용 후 배터리 시장을 고민해봅니다.

10개 만들면 8개는 해외로, K-배터리 순환경제 비상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2023년 배터리 매출/그래픽=윤선정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2023년 배터리 매출/그래픽=윤선정


2031년부터 이차전지 제조 때 일정 비율 이상 재생원료를 사용하도록 한 유럽의 환경 규제가 시행된다.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재생원료, 즉 순환원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수출이 어려워진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당면 과제로 '순환 경제' 조성이 떠오른 배경이다.

우리나라 업계는 생산한 배터리 10개 중 8개 이상을 해외에 판다. 유럽을 필두로 한 친환경 규제가 수출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배터리 순환경제' 조성을 위해선 재생원료를 포함한 공급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10개 만들면 8개 넘게 해외에…재생원료는 어디에서

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 1위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지난해 12조2884억원어치 배터리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10조5396억원, 전체의 85.8%가 해외 수출 실적이다. 국내에 판매한 배터리는 14%를 조금 넘는다.



삼성SDI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이 회사의 지난해 에너지솔루션(소형전지 등 판매) 부문 매출 20조4061억원 가운데 수출은 18조2125억원이다. 사업부 매출 중 89.3%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배터리를 10개 만들면 8개 이상은 해외로 수출하거나 해외에서 직접 만드는 구조라는 얘기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반도체, 자동차 등에 이어 배터리가 새 주력 수출품목으로 성장한 것은 반길 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주요국이 환경성을 포함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를 앞세워 무역장벽을 세우고 있고 자국 혹은 역내 생산을 압박하는 최근 통상 흐름에선 대책이 필요하다.

탄소중립 관계 부처의 한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업계는 생산한 전기차용 배터리의 대부분을 수출하고 있다"며 "전기차의 사용 후 배터리로부터 재생원료를 추출해 사용해야하는 규제 흐름을 고려하면 재생원료 부족현상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남는 전기차용 배터리는 10~15% 정도지만 중고차 해외 수출까지 고려하면 10%가 채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배터리 순환경제 위해선 '재생원료 공급망' 확보해야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세계전기차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EVS37)'에서 전기차 배터리가 전시되어 있다. 2024.04.24.  /사진=뉴시스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세계전기차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EVS37)'에서 전기차 배터리가 전시되어 있다. 2024.04.24. /사진=뉴시스
배터리 순환경제 조성에서 시급한 과제는 '공급망'이다. 국내에 남은 10% 남짓인 배터리를 전량 수거해 모두 재생원료로 활용한다고 가정해도 글로벌 재생원료 의무사용 비중을 충족하기 어렵다.

실례로 유럽은 이르면 2031년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 중 16%를 재생원료로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 비중은 5년 뒤인 2036년 10%p(포인트) 상향된 26%로 강화된다.

우리가 배터리 순환경제를 조성에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선 현 시점에서 10% 안팎 재생 코발트를 더 확보해야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명시적으로 성분별 재생원료 사용비중을 규정하진 않았지만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범위 안에서 자국 혹은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에서 생산한 재생원료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환경부 역시 최근 업계와 손잡고 폐배터리 재생원료 공급망 강화에 나섰다. 환경부는 올 3월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5곳과 폐배터리 인증 시범사업 추진협약을 맺고 △협의체 운영 △재생원료 인증방법 구체화 △인증제도 마련 및 관련제도 개선 등에 착수했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선 국내 자원만 갖고 순환경제 조성이 안된다"며 "우리나라의 수출형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순환원료에 대한 공급망 체계를 국가별로 연계하고 지역별·권역별로 동맹을 꾸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배터리 순환경제 정책은 미래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한다"며 "환경부는 재활용 원료를 생산·공급하는 인증체계 마련·구축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재생원료 제품 생산을 독려하는 등 부처 간 협업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코발트 26%는 재생원료로 써야…수출 '조건'되는 순환경제
EU-미국 배터리 친환경 규제/그래픽=윤선정EU-미국 배터리 친환경 규제/그래픽=윤선정
EU(유럽연합)은 배터리 순환경제에서 재생원료 의무사용 규제를 주도하고 있다. 배터리 이력과 성능 등을 추적하기 위한 '디지털 배터리 여권'은 물론 성분별로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규정하고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 역시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활용해 자국 내 생산 재생원료 사용을 지원하고 있다. 순환경제가 수출조건이 된 상황에서 이들을 주요 교역국으로 삼고있는 우리나라는 강화하는 재생원료 규제라는 무역장벽을 넘어야하는 셈이다.

5일 관련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EU는 올해 2월 '배터리 규정'을 본격 시행했다. 전기차와 LMT(경량운송수단), 용량 2kWh(킬로와트시) 이상인 산업용 배터리에 적용한다. 배터리의 원재료 채굴부터 제조, 소비, 폐기,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내역을 관리한다.

동시에 배터리 제조 시 사용해야하는 재활용 원료 의무비중도 설정했다. 이르면 2031년부터 적용하며 △코발트 16% △리튬 6% △납 85% △니켈 6% 등 일정 비율 이상을 사용 후 배터리(폐배터리)에서 추출한 재생원료로 써야한다.

최초 적용 후 5년 후인 2036년부터는 △코발트 26% △리튬 12% △니켈 15% 등으로 재생원료 의무 사용비중이 강화된다. 유럽은 또 2027년부터는 폐배터리에 있는 리튬 50%, 코발트·구리·납·니켈 등은 90% 추출해 재활용을 장려한다는 내용도 배터리법에 담았다.

미국은 유럽처럼 재생원료 의무사용 비중을 명시하진 않지만 IRA를 통해 자국 시설에서 만든 재생원료를 우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IRA는 세액공제 지급 조건으로 전기차 배터리 부품의 50%이상을 북미에서 제조·조립하고 핵심광물의 40%이상을 미국 혹은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했다. 배터리 부품 요건과 핵심광물요건은 단계적으로 상승 각각 2029년까지 100%, 2027년까지 80% 이상으로 오른다.

폐배터리에서 추출하는 재생원료 역시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원 생산국과 무관하게 미국에서 폐배터리를 수거해 광물로 추출하면 미국산 핵심광물로 본다. 미국에서 발생한 폐배터리는 다른 나라로 옮기지 않고 현지에서 재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미 폐배터리 선점 수요가 발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가 간 폐기물 무단이동 금지를 골자로 한 바젤협약에서도 폐배터리에 대한 규제는 적용 전이다. 1992년 5월 발효된 바젤협약은 유해 폐기물을 포함한 폐기물에 대해 국가 간 상호 동의아래 수출입이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대표적인 품목은 플라스틱으로 현재 폐플라스틱의 수출과 수입은 대부분 금지된 상태다. 전자제품 폐기물 역시 바젤협약에 적용을 받지만 전기차의 폐배터리에 대해선 처리 및 관리 규범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배터리 산업은 주로 미국과 유럽 등 현지에서 생산해 고객사에 공급하는 구조로 업계는 현지에서 재활용 규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배터리법 등 환경규제가 순환경제뿐만 아니라 높은 중국 의존도에 대응하고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만큼 중국 업체에 비해 우위에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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