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예측불가해 더 쫄깃한 이수연 월드, ‘지배종’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4.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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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던져진 떡밥, 남은 4회서 회수가능할까

사진=디즈니+사진=디즈니+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2회씩 공개되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지배종’(극본 이수연, 연출 박철환)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우고 있다. 인공 배양육이란 신선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지배종’은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단번에 전복한 생명공학기업 BF그룹 윤자유(한효주) 대표를 둘러싼 서스펜스 스릴러로 흘러갈 것으로 보였다. 1회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평화롭게 들판을 내달리던 소들이 도축당하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며 윤자유가 “어떤 고기를 드시겠습니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시작할 때만 해도 메시지는 명확해 보였다.

“완전한 지배종이 되고 싶지 않아?” 지난 24일 공개된 ‘지배종’ 6회에서 윤자유(한효주)가 던진 말이다. 대학원생 시절 지도 교수와 함께 역학조사 차 돼지 살처분 현장을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은 윤자유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2학기 만에 돌아와 동기이자 친구 온산(이무생)에게 저 말을 던진다. 다른 생명체를 섭취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인간을 먹이사슬에서 해방시키고 완전한 지배종으로 만들겠다는 전복적인 선언은 전율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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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살처분 같은 끔찍한 현장을 목도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일 수 있다. 온산처럼 채식주의자가 될까 고민하기도 하고, 살처분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공무원처럼 끝내 자신이 목도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자유 같은 발상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온산 역시 우태운(주지훈)에게 사람들이 BF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설명한다. (인공 배양육을 만드는 일이) 돈 벌려고 하는 짓이라는 게 첫 번째 오해. 그리고 또 하나의 오해가 배양육을 단순히 ‘가축 안 잡아먹는다, 환경 안 해친다’ 이 정도로만 받아들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온산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또한 ‘지배종’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비단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간들의 이권 다툼에 그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생각해보면 이런 오해와 그에 대한 반전은 ‘지배종’ 이전에도 있었다.



‘지배종’을 쓴 이수연 작가는 ‘비밀의 숲’으로 명탐정 코난 뺨치는 한국 시청자들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 전적이 있다. 검찰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향응을 제공하던 브로커 박무성(엄효섭)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한 ‘비밀의 숲’은 처음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검사 황시목(조승우)과 박무성에게 약점을 잡혀 사건을 덮으려는 고위 검사 이창준(유재명)의 대립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비밀의 숲’은 몇몇 검사들의 일탈에서 끝나지 않고 거대한 검찰 카르텔을 고발하더니 ‘창크나이트’라는 강렬한 반전의 캐릭터를 보이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끊어진 해안 출입통제선으로 익사 당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며 도통 무슨 이야기로 끌고 갈지 몰랐던 ‘비밀의 숲 2’도 마찬가지. 작은 사건으로 시작해 상관관계가 희박한 이들을 얽어가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우리가 보아온 이수연 작가의 장기다. 선악의 경계가 희미한 캐릭터들의 활용 또한 이야기를 쉽게 유추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 ‘비밀의 숲’ 시리즈를 통해 ‘느그 동재’에서 ‘우리 동재’를 오간 검사 서동재(이준혁) 같은 인물을 보라.

사진=디즈니+사진=디즈니+
‘지배종’ 5, 6회를 통해 드러난 이야기를 보면 인공 배양육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농축산업과 어업 등 1차 산업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BF의 인공 배양육으로 윤자유에겐 각종 테러 시도가 이어지는데, 5회에서 윤자유를 노린 테러범들의 습격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우태운을 살려낸 장면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자못 궁금하게 만든다. 윤자유와 BF 핵심 멤버들이 본사 지하 비밀연구소에 숨기고 있던 비밀, 우태운을 살려낸 비밀은 바로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이었다. BF 서버를 해킹한 내부자로 밝혀진 김신구(김상호) 교수의 아내 이야기로 떡밥을 남기긴 했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새로운 장으로 국면이 전환된 듯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리라. 그리고 그간 윤자유를 지켜보며 의문의 시선을 보여왔던 도슨그룹 선우근(엄효섭) 회장과 그의 아들이자 국무총리 선우재(이희준) 또한 어떤 식으로든 이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을 노려왔음을 깨닫게 됐다. 전 세계 4번째 부자인 선우근은 이 기술을 통해 영생을 노리고, 모종의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선우재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애초 우태운에게 BF에 잠입해 과거 해외 파병부대 순방에서 있었던 폭발 테러의 배후를 밝히라 지시한 전직 대통령 이문규(전국환)를 비롯해 이 기술을 대하는 캐릭터들의 다양한 변모도 기대할 수 있다. 이문규는 우태운과 함께 테러의 진실을 밝히려는, 사적 복수심에서 기인한 것도 있으나 굳이 편을 가르자면 선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보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테러로 두 다리를 잃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을 가진 윤자유와 어떤 식으로든 결탁할지 모른다고 의심하게 된다.

윤자유 주변 인물들 또한 언제든 자신의 이권 내지는 신념으로 다른 행보를 보이거나 예상치 못한 이들과 합종연횡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낳는다. 우태운을 살리는 과정에서 순전히 생리학자의 호기심으로 동의없이 우태운의 망가진 청력을 최대치로 설정해 두는 온산의 모습이나 지하 비밀연구소에서 배제돼 있는 기획실장 정해든(박지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온 세상을 사찰할 수 있는 인공지능 비서 ‘장영실’을 개발한 IT 전문가 서희(전석호) 등 누구도 안심할 인물이 없으니, 드라마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사진=디즈니+사진=디즈니+
무엇보다 인간이 생로병사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이 6화까지 공개된 ‘지배종’을 보고 난 시청자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지난 날 인간 광우병으로 쌍둥이 여동생을 잃어본 윤자유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을 키워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도가 순수한다 한들 그것을 마주하는 인간의 탐욕은 무시무시한 결과를 만들어버릴 수 있다. 본래 보다 안전한 보관과 사용을 위해 제작된 다이너마이트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는 살상 무기로 변질됐던 역사를 보라.

문제는 시간이다. 공개될 때마다 한 꺼풀을 벗고 더 넓고 묵직한 이야기로 나아가는 ‘지배종’에 대한 우려는 남은 회차분이 4회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넓고 묵직한 이야기를, 회수해야 할 무수히 많은 떡밥들을 이수연 작가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시즌2를 고려한다 해도 어느 정도는 시청자의 기대를 해소시켜야 한다. 정리하지 못한 대다수 이야기를 다음 시즌으로 넘기는 우를 범했다가 드라마에 대한 궁금증을 아예 연소시켜버린 작품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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