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팬덤' 강조한 방시혁, 르세라핌 논란에 담긴 진짜 위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4.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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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att Lim/사진=Natt Lim


르세라핌의 코첼라 무대를 통해 발생한 가창력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무대 후 사쿠라의 심경문을 시작으로 하이브 레이블 소속 타 아티스트로도 논란이 번지며 오히려 불길은 커지고 있다. 특히 평소 이들을 깊게 응원하던 코어 팬덤보다 라이트 팬덤에서 이러한 반향이 심하다. K팝 산업의 구조를 지적하며 '라이트 팬덤'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방시혁 의장의 말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르세라핌은 지난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첼라 벨리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무대에 올라 40분간 10곡의 무대를 소화했다. 이번 무대를 통해 르세라핌은 '최단기 코첼라 입성'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지만,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공개된 르세라핌의 라이브 실력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라이브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한다'는 의견과 '무대 상황을 고려하기에는 기본적인 실력이 부족해 보였다'는 의견은 계속해서 충돌했다.



무대 이후 사쿠라가 팬 소통 플랫폼에 올린 글은 이 논란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사쿠라는 실력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데뷔한 지 채 2년도 안 된, 투어도 한 번밖에 안 해본 저희가 코첼라라는 무대에서 가슴을 펴고 진심으로 이 무대에 온 힘을 쏟았다. 그것만으로 바로 인생이고, 르세라핌이라고 느끼는 하루였다"라며 자신들의 의지를 강조했다.

르세라핌의 가창력 논란은 하이브 소속 신인 아티스트인 아일릿에게도 옮겨붙었다. 아일릿은 데뷔곡 'Magenetic'으로 음원차트를 휩쓸던 지난 2일 SBS MTV '더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분명 축하받을 순간이지만 오히려 실력에 대한 의문점이 붙기 시작했다. 앙코르 라이브 무대에서는 불안정한 음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진=빌리프랩/사진=빌리프랩
데뷔 1년 반 만에 코첼라 무대에 올랐지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르세라핌과 데뷔 한 달도 되지 않아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했지만 앙코르 무대에서 흔들렸던 아일릿의 모습은 묘하게 오버랩됐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가수로서 챙겨야 하는 기본에 충실했나라는 의문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사쿠라는 무대에 오른 자신들의 진심을 강조했다. 그러나 코첼라 무대, 아니 어떤 무대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는 가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진심을 바탕으로 보는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까지 보여주는 것이 프로다.


물론, 사쿠라가 말했던 것처럼 만족할 만한 무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특히 그 기준은 코어 팬덤이냐 아니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르세라핌의 코어 팬덤은 '르세라핌이 코첼라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서의 결과물이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라이트한 팬덤 혹은 대중들에게 르세라핌이 코첼라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르세라핌이 코첼라에서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줬을 때 비로소 코첼라 입성이 가지는 의미와 더해지며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아일릿 역시 마찬가지다. 아일릿의 코어 팬덤은 아일릿의 '음악 방송 1위'라는 사실에 집중할 것이다. 반면, 라이트 팬덤이나 대중들에게 이는 그리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라이브의 앙코르 무대마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순간 '탄탄한 실력을 가진 그룹이 좋은 데뷔곡으로 음악 방송 1위까지 차지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사진=tvN/사진=tvN
르세라핌의 코첼라에서 시작된 논란은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를 거쳐 하이브라는 회사까지 향하고 있다. 아직 실력이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데뷔부터 시키는 하이브식 '공장형 아이돌'이 건전하지 못한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의 음악을 라이트하게 즐기는 사람들에게 부정적 인식이 박혔다는 점은 방시혁 의장이 추구하는 'K팝의 확장'과도 연결된다. 지난해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출연을 전후로 방시혁 의장이 강조하는 'K팝 위기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특히 '유퀴즈 온 더 블럭' 출연 당시 방 의장은 K팝의 팬덤 구조를 지적하며 "K팝은 굉장히 집약적인 구조다. 라이트 팬덤이 별로 없다. 주변부의 라이트 팬덤도 많이 붙을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방 의장의 말처럼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은 강렬한 퍼포먼스가 중심이 되는 노래보다 언제든지 듣기 편한 이지 리스닝 장르의 노래를 주로 내세우며 음악적으로는 라이트 팬덤과 대중을 겨냥했다. 그러나 기록, 수치에 집중하고 이를 내세우는 것이 라이트 팬덤을 붙을 수 있는 구조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대중들에게 더 와닿는 건 기록과 수치보다 무대 영상, 실력이다. 기록과 수치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력이 희생된다면 라이트 팬덤을 강조한 방 의장의 지론은 허울뿐이었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소속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는 하이브는 엔터사 최초 대기업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 하나의 성과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의 논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에도 제약에 걸릴 것이 분명하다. 하이브는 수장의 발언과 역행하고 있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바꿔놓고 'K팝의 확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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