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씨, '은퇴선언' 번복해도 괜찮아요!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4.04.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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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M엔터테인먼트사진=SM엔터테인먼트


“저의 계약은 2025년 12월 31일까지입니다!”

지난 4월 6일 보아는 은퇴를 암시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고 이튿날 위 내용이 포함된 글을 추가로 게재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그때까진 최선을 다하겠다”며 은퇴라는 말에 깜짝 놀란 팬들을 안심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때까진”이라는 시기상 전제. 이 조건부 전제는 그날 이후의 보아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해 안심했던 팬들을 다시 초조하게 만든다. 2026년 1월 1일부터 가요계의 ‘넘버원’이었던 싱어송라이터로서 역할을 내려놓고 프로듀서와 배우라는 인생 2막을 열겠다는 것인지 셋 중 하나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셋 다 내려놓겠다는 것인지, 현재로선 당사자 외엔 알 길이 없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백화점 댄스 경연대회에서 SM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 디렉터 눈에 들어 13살에 데뷔한 보아는 시작부터 일본 시장을 노리고 훈련된 총아였다. 이를 위해 12살이던 1998년 여름부터 3년 동안 일본어와 영어, 보컬과 댄스, 무대매너 교육을 받은 그는 2000년 8월에 발표한 ‘ID; Peace B’와 일본 데뷔작 ‘Listen To My Heart’로 단숨에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1년 여 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내놓은 ‘No.1’은 그런 보아를 한국과 일본 정상에 똑같이 올리며 하마자키 아유미나 코다 쿠미 같은 당대 제이팝 슈퍼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했다. 또 같은 해 연말에는 일본에서 한해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가수들만 출연한다는 ‘홍백가합전’에 나가 일본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확인했다(보아는 그 ‘홍백가합전’에 6회 연속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아무로 나미에와 우타다 히카루라는 거물들을 제치며 오리콘 차트에서 8회 연속 1위에 오르고 누적 앨범 판매량만 1,000만 장 이상을 기록한 보아. 17살 때 ‘가요대상’을 받아 ‘최연소 수상’을 기록한 그가 지금 은퇴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팬들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데뷔한 보아를 위해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는 30억 원을 투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자금이 부족해 빌려 마련한 이 돈으로 탄생한 보아는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을 더해 해외시장을 뚫은 케이팝 가수 1호로서 역사에 남았다. 이는 사무실에 비가 새 바가지로 물을 퍼내며 일군 ‘글로벌’ SM 신화의 사실상 첫 장이었기도 하다. 이후 미국 데뷔작 ‘BoA’로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앨범 차트 진입(127위)이라는 쾌거를 이룬 그의 경제적 가치를 2000억 원으로 매긴 분석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감정을 팬들에게 갖게 했다. 근래 에이티즈를 포함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만 8팀을 올린 케이팝의 저력, 그 선봉엔 보아가 있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사진=SM엔터테인먼트


시작엔 이수만과 SM의 그늘이 있었지만 보아는 그 그늘을 벗어나려 지난 20여 년을 예술적으로 고군분투했다. 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꾸민 는 그 정점이었고, 이후에도 그는 아티스트로서 분명한 방향과 정체성을 품고 자신의 길을 닦았다. 특히 음악은 “실존하는 타임머신”이라는 말, 즉 어느 누구의 특정 순간을 함께 한 친구 같은 존재로 남고 싶다는 아티스트로서 바람은 보아가 어떤 음악을 지향하는지 알게 해 준다. 그건 타인의 만족을 상정한 대중성과 자아의 끈을 부여잡는 성취감을 동시에 노리는 전형적인 장수 예술가들의 목표인 것이다. 타고난 지구력과 성실성으로 앞만 보며 달려온 그에겐 아직 할 일이 많다.

“관리 안 하면 안 한다 욕하고, 하면 했다 욕하고, 살 너무 빠졌다고 살 좀 찌우라고 해서 살 좀 찌우면 돼지 같다 그러고.”

지금은 내렸지만 지난 3월 29일 밤 보아가 자신의 SNS에 남긴 글 중 일부다. 이는 2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에 출연한 보아의 외모에 달린 악플에 속상했던 당사자가 남긴 아픈 흔적이다. 아무리 무방비로 대중 앞에 전시되는 연예인의 근본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도무지 얻을 것이라곤 없는 저 일차원적 비난들은 분명 ‘정신이 건강한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보아에겐 큰 상처가 됐을 법하다. 우연일까. 같은 날 팝스타 리조(Lizzo)도 외모와 관련한 악플에 시달리다 은퇴를 암시하는 글을 SNS에 남겨 팬들을 걱정하게 했다. “내 외모가 놀림감이 되고, 익명의 사람들이 내 인격을 깎아내리며 날 무례하게 대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세상이 날 원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두겠다.” 하지만 그는 4월 2일 자신의 SNS에 동영상을 올려 “내가 ‘그만둔다’고 한 건 악플에 관심을 끄겠다는 얘기였다”며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내 삶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인터뷰에서 보아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단언한 악플은 우리 사회와 제도가 행위의 익명을 보장, 방관하고 있는 현실을 바닥부터 바꾸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오랜 인터넷 폐해다. 만약 보아가 정말 은퇴를 결심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결심이 혹여 악성 댓글들에 지쳐 내린 것이라면 필자는 그 판단을 조금 유보해 주길 바란다. 보아 나이 이제 겨우 37살. 예술가로선 스스로 주도해 더 깊고 진정성 있는, 아울러 보다 수준 높은 자신만의 것을 꺼내보여야 할 나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대로 물러난다면 그건 한 줌의 악플러들에게 백기를 드는 일이 아닐까. 리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음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악플에 신경을 끄고 더 다부진 미래를 각오한 그처럼, 부디 보아도 일부 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막말에 가졌던 분노와 실망을 은퇴 대신 예술로 승화시켰으면 좋겠다. 본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듯 “가장 보아다운” 음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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