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M엔터테인먼트
지난 4월 6일 보아는 은퇴를 암시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고 이튿날 위 내용이 포함된 글을 추가로 게재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그때까진 최선을 다하겠다”며 은퇴라는 말에 깜짝 놀란 팬들을 안심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때까진”이라는 시기상 전제. 이 조건부 전제는 그날 이후의 보아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해 안심했던 팬들을 다시 초조하게 만든다. 2026년 1월 1일부터 가요계의 ‘넘버원’이었던 싱어송라이터로서 역할을 내려놓고 프로듀서와 배우라는 인생 2막을 열겠다는 것인지 셋 중 하나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셋 다 내려놓겠다는 것인지, 현재로선 당사자 외엔 알 길이 없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백화점 댄스 경연대회에서 SM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 디렉터 눈에 들어 13살에 데뷔한 보아는 시작부터 일본 시장을 노리고 훈련된 총아였다. 이를 위해 12살이던 1998년 여름부터 3년 동안 일본어와 영어, 보컬과 댄스, 무대매너 교육을 받은 그는 2000년 8월에 발표한 ‘ID; Peace B’와 일본 데뷔작 ‘Listen To My Heart’로 단숨에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1년 여 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내놓은 ‘No.1’은 그런 보아를 한국과 일본 정상에 똑같이 올리며 하마자키 아유미나 코다 쿠미 같은 당대 제이팝 슈퍼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했다. 또 같은 해 연말에는 일본에서 한해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가수들만 출연한다는 ‘홍백가합전’에 나가 일본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확인했다(보아는 그 ‘홍백가합전’에 6회 연속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아무로 나미에와 우타다 히카루라는 거물들을 제치며 오리콘 차트에서 8회 연속 1위에 오르고 누적 앨범 판매량만 1,000만 장 이상을 기록한 보아. 17살 때 ‘가요대상’을 받아 ‘최연소 수상’을 기록한 그가 지금 은퇴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팬들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관리 안 하면 안 한다 욕하고, 하면 했다 욕하고, 살 너무 빠졌다고 살 좀 찌우라고 해서 살 좀 찌우면 돼지 같다 그러고.”
지금은 내렸지만 지난 3월 29일 밤 보아가 자신의 SNS에 남긴 글 중 일부다. 이는 2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에 출연한 보아의 외모에 달린 악플에 속상했던 당사자가 남긴 아픈 흔적이다. 아무리 무방비로 대중 앞에 전시되는 연예인의 근본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도무지 얻을 것이라곤 없는 저 일차원적 비난들은 분명 ‘정신이 건강한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보아에겐 큰 상처가 됐을 법하다. 우연일까. 같은 날 팝스타 리조(Lizzo)도 외모와 관련한 악플에 시달리다 은퇴를 암시하는 글을 SNS에 남겨 팬들을 걱정하게 했다. “내 외모가 놀림감이 되고, 익명의 사람들이 내 인격을 깎아내리며 날 무례하게 대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세상이 날 원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두겠다.” 하지만 그는 4월 2일 자신의 SNS에 동영상을 올려 “내가 ‘그만둔다’고 한 건 악플에 관심을 끄겠다는 얘기였다”며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내 삶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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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뷰에서 보아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단언한 악플은 우리 사회와 제도가 행위의 익명을 보장, 방관하고 있는 현실을 바닥부터 바꾸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오랜 인터넷 폐해다. 만약 보아가 정말 은퇴를 결심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결심이 혹여 악성 댓글들에 지쳐 내린 것이라면 필자는 그 판단을 조금 유보해 주길 바란다. 보아 나이 이제 겨우 37살. 예술가로선 스스로 주도해 더 깊고 진정성 있는, 아울러 보다 수준 높은 자신만의 것을 꺼내보여야 할 나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대로 물러난다면 그건 한 줌의 악플러들에게 백기를 드는 일이 아닐까. 리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음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악플에 신경을 끄고 더 다부진 미래를 각오한 그처럼, 부디 보아도 일부 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막말에 가졌던 분노와 실망을 은퇴 대신 예술로 승화시켰으면 좋겠다. 본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듯 “가장 보아다운” 음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