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겠네…똑같은 피싱 대본으로 4번 연락, 허술한 일당

머니투데이 민수정 기자 2024.04.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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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범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보이스피싱범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OO 씨 되시죠? 일전에 방문해 주신 스웨디시 마사지 가게 사장인데..."

지난 4일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30대 박모씨는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총 4번에 걸쳐 같은 보이스피싱 일당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박씨가 가장 처음 연락을 받은 건 지난 1월 중순. 출근 준비를 하던 박씨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자신을 박씨가 이전에 방문했던 '스웨디시 마사지 가게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스웨디시 마사지는 오일로 마사지로, 주로 탈의한 채 이뤄져 퇴폐 업소로 운영되는 곳이 종종 있다.

그는 "우리 업소 방문하면서 피해 볼 만한 일이 생겨 연락했다. 장사가 안돼서 실장들 시켜서 방마다 카메라 설치하고 서비스받으면서 마무리하는 영상을 촬영했다"며 "영상 정리 중 본인 영상이 나왔다. 흥신소 운영도 같이하고 있어 본인 신상뿐만 아니라 가족·지인 연락처 60개 정도 미리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입금을 안 하면 지인 수십명에게 영상을 뿌리겠다"며 부하 직원에게 말하듯 "막내야 얘 돈 안 보내면 영상 뿌려라"라고 협박까지 했다.

박씨는 협박범이 주변 지인에게 피해를 줄까 순간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살면서 한 번도 마사지업소에 간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박씨가 "방문한 적 없다"고 항변하자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다.

약 2달 후 박씨는 같은 래퍼토리의 전화를 받게 됐다. 상대방은 '100만원'을 요구했다.


이미 보이스피싱이라는 걸 눈치챘던 박씨가 느긋하게 대답하자 일당은 박씨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박씨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등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2주 뒤 다른 번호로 세 번째 연락이 왔을 때 박씨는 이미 분노에 가득 찬 상태였다. 박씨는 "왜 이런걸 하는 거냐. 뿌려도 된다. 이게 몇번째냐. 이거 끊고 내가 전화하면 너 전화 받을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서에 가겠다는 경고도 했다.

그런데도 지난달 말 잠자고 있던 박씨의 휴대 전화가 또 한 번 울렸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박씨는 대본을 읽듯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에 헛웃음이 나왔고 이에 보이스피싱 일당이 전화를 끊었다.

오윤성 범죄학 교수는 보이스피싱 수법에 대해 "낚싯대를 수십 개 뿌려 놓고 거기서 한두 명만 걸려도 일당이 원하는 금액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이전에 유사한 방법으로 다른 남성에게 연락한 보이스피싱범은 실제로 돈을 받기도 했다. 본인이 떳떳하면 보이스피싱범이 우스운 사람이 되는데 그렇지 않다면 갑을 관계가 순식간에 바뀌는 경우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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