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모항항 백사장 인근에서 2008년 신년 시무식을 겸해 원유 유출 피해 복구를 위한 방제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사진=머니투데이 DB 사진
기자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그의 모습은 2008년 전경련 시무식 때다. 보통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시무식과는 달리 그는 영하의 찬바람이 가득한 태안 모항리 백사장 인근에서 시무식을 열었다. 당시 사회적 현안이었던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피해 복구를 위한 방제활동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조 명예회장은 당시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고무장갑을 낀 채 효성이 만든 첨단 부직포와 흡착포로 바위에 낀 기름 때 하나하나를 닦아냈다. 언론의 사진촬영용 포즈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기름을 닦는 그의 모습에선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는 어떤 일이든 하면 빈틈없이 하는 단단한 차돌 같은 성품을 가진 작은 거인이었다. 재계의 맏형 역할에 힘을 쏟았던 그는 일평생 '기술 중심 주의'를 강조했던 공학도로서 효성의 글로벌 1위 제품인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2004년 5월25일 노무현 대통령과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대기업대표와의 대화에 앞서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오른쪽부터), 조양호 한진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건희 삼성회장 등이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사진제공= 효성그룹 제공
당시 조 회장은 아무도 인수하려고 하지 않았던 하이닉스에 유일하게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며 인수의지를 불태웠었다. 그는 두터운 반도체 관련 서류들을 직접 들고 퇴근할 정도로 반도체 인수에 열정을 보였었다. 비난 여론에 인수의향을 철회한 그 하이닉스는 3년 후 SK그룹이 인수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하이닉스 인수좌절의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하이닉스 인수가 무산된 그 이듬해 조 회장은 담낭 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7월엔 전경련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가 암으로 갑작스럽게 2010년 전경련 회장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는 더 길게 한국 재계의 수장으로서, 효성 그룹의 회장으로서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거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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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명예회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업을 번창시켜라"는 마지막 유언을 후손들에게 남겼다고 한다. 이제는 그 유지를 이어받아 그의 아들들이 더 큰 효성을 만들어 국가와 국민에 봉사할 때다.
조 명예회장은 이제 마음 편히 하늘나라에서 먼저 가 기다리고 있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 고 구본무 LG 회장, 고 조양호 한진 회장 등 과거 전경련 부회장들과 만나서도 한국의 경제 발전을 기원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