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에 돈 빌려주고, 유증하고…'책임준공 늪'에 빠진 금융지주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2024.03.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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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 자금 확보 방안/그래픽=이지혜최근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 자금 확보 방안/그래픽=이지혜


주요 금융지주회사가 '책임준공 확약'의 늪에 빠졌다. 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책임준공을 못 지키는 시공사가 발생하자 리스크가 책임준공을 확약해준 신탁사로 전이되고 있다. 금융지주는 신탁 자회사에 유상증자나 대출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 중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주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자산신탁에 2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유상증자 형태로 투입했다. 2019년 말 우리자산신탁(옛 국제자산신탁)을 우리금융그룹에 편입한 후 이뤄진 첫 번째 대규모 유상증자다.



이번 유상증자는 자본확충과 함께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차입형 토지신탁과 책임준공확약형(이하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실에 대응하기 위해 이뤄졌다. 특히 최근 책임준공형에서 분쟁이 잇따르면서 금융지주 계열의 부동산신탁사 리스크가 커졌다.

책임준공형은 시공사가 준공에 실패하면 신탁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대신하거나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대신 상환해야 한다. 신탁사가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차입형보다 리스크는 낮고, 책임준공 의무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관리형 토지신탁보다는 수수료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신탁사의 신용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금융지주 계열의 신탁사가 적극 책임준공형에 뛰어들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시공사의 책임준공이 미이행될 가능성이 낮아 신탁사의 주력 사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금리 상승과 원가 상승 등으로 책임준공형의 부실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우리자산신탁은 우리금융에 편입 후 높아진 대외 신용도를 바탕으로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을 늘려왔다. 지난해 말 기준 43건의 책임준공을 약정했다. 하지만 최근 책임준공 기한을 넘기는 사업장이 생기면서 대손비용 부담리스크가 커졌다. 이미 지난해 말 책임준공기한이 넘은 사업장도 발생했다. 해당 사업장이 빌린 PF 대출금액은 430억원 규모다.

다른 금융지주도 신탁 자회사로 금전 부담이 커졌다. 2019년 5월 신한금융지주 자회사로 편입된 신한자산신탁은 지주회사로부터 총 2000억원을 빌릴 예정이다. 이날 1000억원을 빌리고, 다음 달 1000억원을 추가 차입하는 방식이다.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자회사 자금지원을 목적으로 회사채까지 발행했다.


신한자산신탁도 우리자산신탁과 함께 금융그룹 편입 후 적극적인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에 나섰다. 책임준공형이 주력사업으로 지난해 말 기준 133건을 진행 중이다. 이미 8개 사업장에서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신한자산신탁에 소송을 제기한 대주단도 있다. 신한자산신탁 관계자는 "준공기한 경과에도 불구하고, 책임준공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B부동산신탁은 지난달 단기차입금(대출) 한도를 3400억원 증액했다. 7650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도를 늘려놨다. 지난해 말 기준 KB부동산신탁의 실제 차입금액은 3450억원이다. KB부동산신탁은 "안정적 유동성 관리를 위한 선제적 한도 설정"이라고 증액 이유를 설명했다. KB부동산신탁은 72건의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중레버리지(자회사 출자총액) 규제 때문에 금융지주사가 유상증자 형태로 신탁사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신탁사가 차입금 한도를 늘리는 것도 이때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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