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코스 창작성 없다" 300억 손배소 승소 이끈 변호사들의 내공[로펌톡톡]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24.03.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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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법무법인 세종 윤주탁·방세희 변호사

편집자주 사회에 변화가 생기면 법이 바뀝니다. 그래서 사회 변화의 최전선에는 로펌이 있습니다. 발 빠르게 사회 변화를 읽고 법과 제도의 문제를 고민하는 로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왼쪽부터)법무법인 세종 IP그룹 방세희(변호사시험 3회), 윤주탁(사법연수원 33기), 김소리 변호사(변호사시험 8회)/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왼쪽부터)법무법인 세종 IP그룹 방세희(변호사시험 3회), 윤주탁(사법연수원 33기), 김소리 변호사(변호사시험 8회)/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골프 종주국이 영국과 미국이라면 스크린 골프 종주국은 한국이다.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스크린골프가 레저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순항 중이던 스크린 골프 업계는 '저작권'에 발목을 잡혔다. 골프코스를 설계한 3개사는 업계 선두 주자인 골프존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약 31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 업체는 '골프코스는 창작성을 갖추고 있어 저작권의 보호대상인 저작물에 해당하며 골프존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1심 법원으로부터 받아냈다.



이 판결은 서울고등법원 2심 재판부에서 뒤집혔다. 항소심에서 골프존을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의 윤주탁(사법연수원 33기)·방세희 변호사(변호사시험 3회) 등은 골프코스 설계도가 '창작성' 있는 저작물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며 재판부를 설득했다.

애매모호한 저작권법…"정답은 없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청진동 세종 회의실에서 만난 윤 변호사는 "골프코스 설계도는 건축저작물로서 기능적 저작물에 해당한다. 경기 규칙과 국제 기준에 따른 제약, 지형적 요소 등으로 인해 창작성이 발휘될 공간이 적은 영역"이라며 "창작성 인정을 위해서는 골프코스 설계도에 기능적 요소와 구별되는 창작적 표현이 특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은 지식재산권(IP) 중 가장 넓고 쉽게 인정되는 권리다. 특허권·상표권·디자인권은 등록해야만 그 권리가 인정되지만, 저작권은 저작물이 만들어진 순간 권리가 생긴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자적 성격을 갖춘 창작성이 없으면 법적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이라는 점이다. 아이디어에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표현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은 따로 없다.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재현되는 이유다. 윤 변호사는 "아이디어는 공중이 누려야 할 영역, 표현은 독점이 가능한 영역으로 이를 구분하는 데는 정답이 없다"며 "정책적 판단이나 시대적 흐름이 반영돼 관련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국내외 눈문, 유사 판례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정교하게 방어논리를 수립해야 했다. 방 변호사는 "저작권 소송 분쟁 양상이 워낙 다양해 개별 사안마다 판단 근거로 쓰이는 증거들이 다르다"며 "골프코스 설계도 창작성과 관련해 미국골프협회(USGA) 골프장 건설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 여러 근거 자료들을 바탕으로 골프코스의 그린, 페어웨이, 벙커 등 구성요소들은 골프 경기라는 기능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요소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윤주탁 변호사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윤주탁 변호사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저작권 분쟁 막으려면…" IP 분야 베테랑의 조언
2심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골프코스 설계도가 아이디어와 분리되는 '표현'에 해당한다거나 기능적 요소 외에 창작성 있는 표현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달리 특정되지도 못했다고 판단했다.

골프코스 설계도의 창작성을 부정한 최초의 판례를 끌어낸 비결은 세종 IP 그룹 변호사들의 '내공'이다. 윤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특허법원 판사와 서울고법 지식재산권전문재판부 고법판사 등을 지낸 전문가다. 2021년 세종에 합류해 IP 그룹 특허팀장을 맡고 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방 변호사는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국내외 주요 기업의 소송과 자문을 맡아왔다.

방 변호사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지식재산권 분야 소송과 자문 수요 자체가 확실히 증가한다"며 "분쟁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산업 메커니즘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바탕으로 각 분야 법을 전문으로 하는 팀들과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세종이 저작권 분야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만큼 전문 인력 양성이 잘 돼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저작권 분쟁 특성상 계약서 등 여러 제약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데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아 가급적 분쟁 발생 전 단계에서부터 전문가 자문하기를 권유한다. 사전 자문만 잘 해도 저작권 분쟁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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