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부터 교수까지 "증원 반대"…집회 본 시민은 "밥그릇 챙기기"

3일 의협 비대위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
주최 측 추산 최초 신고 인원 2배 4만 몰려
의협 "의대생·전공의와 학부모 참여 많다"
대한의학회·여의사회 등 교수도 연대 의사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대로 인근에서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를 저지하기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시위 참여자가 집회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사진=최지은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가 3일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를 저지하기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의료계와 합의 없는 의대 증원 결사반대" "의대 정원 졸속확대 의료체계 붕괴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흰색 글씨로 '의대 증원 X' '원점 재검토'가 쓰인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1시간 30분이 넘게 자리에 서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집회엔 의협 추산 4만여 명(최초 신고 인원은 2만 명), 경찰 추산 1만2000명이 참가했다. IFC몰 인근에서 시작해 마포대교 앞까지 여의대로 5개 차선이 인파로 가득 찼다. 사회자는 연신 이태원 사고를 거론하며 "안전사고에 유념해 달라"고 외쳤다.

이날 의사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을 포함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는 데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연단에 오른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사가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을 '의료 개혁'이란 이름으로 일방 추진했다"며 "전공의와 의대생으로 시작한 이번 투쟁은 미래 의료 환경을 제대로 지켜내기 위한 일이자 국민 건강 수호를 위한 외침"이라고 성토했다. 이정근 의협 회장 직무대행 역시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과 교육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한 절대 의사 수 증원은 필수·지역의료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날을 세웠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대로 인근에서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를 저지하기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꽃샘 추위에도 불구하고 이날 집회는 최초 신고 인원인 2만명보다 2배 많은 4만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은 1만2000명)이 참가했다./사진=최지은 기자

의협 산하 시·도의사회뿐 아니라 직역별 의사회와 전공의, 의대생, 대학 교수 등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했다. 현장에서 만난 70대 은퇴 의사는 머니투데이에 "내 미래에 대한 욕심보다 의대생과 전공의 미래가 걱정돼 나왔다"며 "법적 처벌만 앞세우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병원에서 사직했다는 20대 전공의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동의하는 동료들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참가했다"고 했다. 경남 창원시에서 50여명의 의사와 함께 올라왔다는 한 개원의는 "의대 증원은 교실 과밀화로 이어져 결국 의료 교육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다"며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집회에서 대학병원 교수가 상당수 포함된 대한의학회와 한국여자의사회는 공식적으로 의협과 '연대 투쟁'을 선언했다. 홍순원 여의사회 차기 회장(강남세브란스병원 병리과 교수)은 "무분별한 의대 증원은 의료 교육의 질 저하로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며 "의과대학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림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인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 역시 "의료계는 필수 의료를 지원하고 법적 위험성을 낮춰달라 요구했지만, 정부는 엉뚱한 의대 증원 카드를 들고나왔다"며 "앞으로 20년 더 응급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필수 의료를 살리는 데 집중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대로 인근에서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를 저지하기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한 시위자가 가면을 쓴 채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집회 규모에 대해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50대 박모 씨는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데 시위를 보니 본인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며 "사회 전반이 뒤숭숭한데 이 시위가 불을 더 붙이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혀를 찼다. 여의도공원에서 만난 40대 최모 씨는 "의대 증원을 전제로 두고 의사와 정부가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며 "갈등이 심해질수록 결국 피해는 환자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집회 중 불미스러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의사 총궐기 대회를 앞두고 온라인상에서 의사가 제약 회사 영업사원을 압박해 총궐기대회에 동원한다는 글이 퍼지면서 '참석 강요 의혹'이 일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집회에 앞서 여의도 인근에서 취재진과 만나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집회 참가 강요 등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주수호 의협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비대위나 각 시·도의사회 등 직역 단체에서 제약회사 직원을 동원하라고 요구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응수했다.


경찰은 지난 1일 김택우 비대위원장, 주수호 홍보위원장,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 임현택 대한청소년학과의사회장, 노환규 전 의협 회장 등 5명의 자택을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현재 해외에 있는 노 전 회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소환 조사 등 사법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