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조 퍼부어도 실패"…한국 여성에 저출산 이유 물어본 BBC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4.02.2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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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같은 극단적 사례 없다"
1년간 전국 돌며 여성들 만나

14일 서울 시내 한 구청의 출생신고 창구./사진=뉴스1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14일 서울 시내 한 구청의 출생신고 창구./사진=뉴스1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영국 방송 BBC가 한국의 출산율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BBC는 출산 여성에 대한 근무환경이 녹록지 않은 데다 집값, 사교육비 상승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BBC는 지난 27일(현지시간) 게재한 '왜 한국 여성들은 아이를 갖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출산율 문제를 보도했다.



보도를 맡은 BBC 서울특파원 장 매킨지 기자는 한국 역대 정부가 20년간 379조8000억원을 투자했음에도 출산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세계적으로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으나 한국만큼 극단적인 사례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입안자들은 여성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다"며 "그래서 지난 1년간 전국을 돌며 한국 여성들이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379조 퍼부어도 실패"…한국 여성에 저출산 이유 물어본 BBC
"한국은 끊임없는 일의 연속"
BBC는 가장 먼저 TV 프로듀서로 근무하고 있다는 예진씨의 사연을 다뤘다. 5년 전 비혼, 비출산을 결심했다는 예진씨는 "한국에서는 집안일과 육아를 동등하게 분담할 상대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예진씨는 보통 저녁 8시에 퇴근하는 데다 더 늦게까지 야근할 때도 있다면서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다. 끊임없는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는 아이를 가지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력이 있다"고 했다. 이미 예진씨는 직장에서 가깝게 지내던 뉴스진행자 2명과 자신의 여동생이 출산 후 퇴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스텔라씨는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출산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스텔라씨는 "출산 후 처음 2년 간은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매우 우울할 것 같다. 나는 내 경력을 사랑한다"고 했다. 또 주거비용이 너무 높아 일을 관둘 수도,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한국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는 곳"
스텔라씨는 사교육비도 문제로 꼽았다. 스텔라씨는 한국 부모들이 자녀 한 명 학원비로 매달 100만원 넘게 지출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그러한 수업을 받지 않으면 아이들이 뒤처지게 된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아직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민지씨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끝없이 경쟁해야 했다. 너무 지쳤다"며 "한국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민지씨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평생을 공부에 바쳤다면서 아이에게 경쟁의 무게를 지우고 싶지 않아 비출산을 결심했다고 했다.

BBC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민생토론회에서 "수도권 집중과 과도한 경쟁이 심각한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발언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정치인들이 (출산율 문제의) 위기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저출산을 구조적 문제로 다루겠다고 했으나 정책적으로 어떻게 해석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전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지난해 4분기만 따지면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처음으로 0.6명 선까지 내려앉았다. 인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은 최소 2명을 넘어야 한다. 2명이 결혼해 자녀 2명을 낳아야 인구가 줄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한국 사회는 앞으로 인구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을 가정하고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인구 감소는 국방, 조세, 연금 등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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