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동 고문(법무법인 세종)
그러나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쿠바는 혁명의 박물관이었다. 거리와 상점 곳곳에 카스트로, 체 게바라의 동상과 사진이 수없이 걸려 있었다. 쿠바를 지탱해온 버팀목은 국가 주도의 복지와 배급시스템이다. 최소한의 생활수준은 보장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소유권은 없지만 살 집도 나눠준다. 현지 가이드도 최근 딸을 출산했는데 아기용품들이 담긴 마더박스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쿠바 전문가 예수대의 배진희 교수는 이걸 '가난하지만 행복한 복지국가'라고 표현했다.
쿠바는 현재 식량과 의약품, 전기부족으로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1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대량으로 국가를 탈출한다. 국가경제의 10%를 차지하는 관광업이 코로나 이전 매년 400만명에서 코로나 이후 60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모든 산업이 국유화한 쿠바에서 전체인구 1100만명 중 60만명이 호텔, 택시, 식당 등 관광업에 종사했는데 코로나 이후 거의 모두 실업자로 전락했다. 쿠바 하면 설탕인데 가뭄과 비료부족으로 최근에는 수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가경제의 역대급 경제난으로 2021년 1달러당 25페소로 고정했지만 외환시장에서는 1달러당 300페소까지 뛰어 물가가 10배 이상 올랐다. 그 결과 쿠바의 지난해 GDP 성장률은 -11%로 30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변하지 않는 혁명의 이념에 갇혀 있던 쿠바가 마침내 우리에게 문을 열었다. 이번 수교엔 K컬처를 비롯한 한류, 한국 기업들의 우수한 제품,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 등이 기여했다. 쿠바 젊은이들이 여태 국가수교가 안 됐냐고 반문한다는 현지 분위기는 문화외교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쿠바의 경제적 절박함에 있다. 먹고사는 문제는 이념을 초극한다. 형제의 나라 북한을 등지고 한국을 택한 근본적 동기는 다름아닌 경제적인 이유다. 최근 쿠바의 모습은 바로 북한의 모습이다. 쿠바의 현실과 선택은 쿠바에 비친 북한의 거울이다. 카스트로 형제의 60년 독재를 끝내고 새로운 길을 걷는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지도자의 결단이 훌륭하다. 국민들의 가난과 나라의 미래를 읽는 지도자의 의지 속에 국가의 희망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