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권을 헌법에 넣겠다고 공약하자[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4.02.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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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기업이 자사 여성 임원들과 기자들(주로 여성)을 한자리에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이제 신입사원은 남녀 비율이 거의 같다지만 임원 자리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유리천장이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5% 남짓. 그런데 간담회를 열었던 기업은 여성 임원 비율이 20%에 가까웠다. 제조업임에도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로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고 했다.

당시 간담회에 갔던 기자가 들려준 얘기 가운데 인상 깊었던 건 이거다.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자기 자리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는지 기자가 물었다. 여성 임원들은 하나같이 "따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사람들은 안다. 어린이집이 아무리 좋아도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아이 키우는 일이다. 육아는 남편이 함께한다고 해도 여성의 일로 인식된다.



친정 부모나 시부모가 아이 기르는 걸 도맡아 줘 회사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게 여성 임원들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세상엔 도움을 청할 대상이 없는 여성들이 더 많다. 임원들의 말을 돌려 생각하면 직업에 있어서는 재능이 충분한데도 육아에 에너지를 쏟아야 해 경쟁에서 탈락한 여성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독자들도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나의 상사가 누구인가 보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저출산 현상이 가팔라지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단면이다. 여성들에겐 직업상 성취에 있어 아이가 있다는 게 핸디캡이다. 육아휴직과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아무리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승진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많은 경우 경단녀의 길을 걷는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그들이 불리한 조건에 처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런 저출산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해지고, 여성노동력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다. 다시 그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악순환은 가속된다.



"그 때 아이 밴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할 것이다."(루가의 복음서) 예수가 말한 '형벌의 날'은 따로 있지 않다.

자신의 2세를 만드는 것은 종족번식이라는, 생물학적 욕구의 결과다. 거부하기 힘든 유전자의 명령이다. 그렇다면 출산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권리라는 뜻의 '천부인권' 차원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권리라 할 수 있다. 출산은 그 자체로 성취라는 게 자연법칙이다. 우리도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손가락질받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외부 간섭 때문에 '자연스러움'이 부정되고 있다. 출산할 권리야말로 유전자와 사회,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데 권리라고 인식조차 못 하게 됐다.

출산권은 생물 차원의 내적 욕구에 기반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권리로 혼인 여부나 혼인의 형태, 성적인 지향, 경제력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인정돼야 한다. 출산권에서 교육받을 권리와 근로할 권리가 태어난다. 출산이 없다면 헌법 전문에 나오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에 대한 다짐'도 공허해진다. 출산은 그 자체로 곧 납세(의 의무)이자 국방(의 의무)이고, 안전과 자유와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우리 시대에 저출산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면 출산이 핸디캡으로 작용하지 않게 하는 일에 최우선을 둬야 한다. 단순히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선언만으로는 부족하고 출산 장려를 목민관의 소임 정도로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자유는 내버려 두면 도망가버린다.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을 흉내내자면 권리는 내버려 두면 도둑맞고 쫓겨난다. 출산을 제약하는 조건들에 압도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소중한 권리를 도둑맞은 결과가 출산율 0.68이라는 전무한 - 후무(後無)는 아닐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게 더 우울하다 - 수치로 나타났다.

헌법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담은 그릇이라면 출산권을 명시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출산을 다른 활동보다 우대하는 정책의 시작도 출산권의 헌법화이다. 권리를 되찾아와 헌법에 붙잡아놓자.
출산권을 헌법에 넣겠다고 공약하자[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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