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정신건강 짊어진 오은영의 무거운 어깨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1.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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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서 육아부터 결혼, 금주까지 어루만지는 세계관 확립

사진=MBC사진=MBC


요즘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콘텐츠, 이른바 ‘K-드라마’, ‘K-예능’, ‘K-팝’ 등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바로 ‘세계관’이다. 예능에서 웹 콘텐츠를 중심으로 잇따라 ‘부캐릭터’가 나오는 유행도 비슷하다. “세계관을 지켜”, “세계관을 어떡하지?”하는 멘트에서도 들을 수 있다. 대한민국 대중문화에서 ‘세계관’은 창작자가 만든 여러 설정을 종합해 작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 세계에서 그 캐릭터가 하는 일은 그 세계의 안이기 때문에 수용되고, 때로는 현실의 사람들이 ‘수용해야’하는 당위가 된다.

세계관의 특성은 그 특수한 설정 말고도 분화와 재조립이 쉽다는 점이다. 마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처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이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의 콘텐츠는 동일한 세계관에서 창조된 또 다른 콘텐츠와 연결되고 분화하며 융합한다.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계관’의 위력은 최근 방송가의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은 처음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을 통해 이름을 알린 후 SBS ‘백종원의 3대천왕’을 통해 구체화했다. 이후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자영업 구제의 단계로 나아갔고,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나 최근 ‘장사천재 백사장 2’을 통해 세계화를 노리기도 한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작가, 방송인인 오은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은영 박사의 콘텐츠 역시 하나의 세계관에서 줄을 잇듯 ‘스핀오프’라는 형식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로 분화해갔다. 이는 타 채널의 콘텐츠와도 이어져 하나의 큰 ‘띠’를 형성했다. 가히 ‘오은영 유니버스’, ‘오은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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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꽤 오래전이다. 오은영 박사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방송된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고정 출연했다. 당시 문제행동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이 없었던 전국의 부모들에게 오 박사의 솔루션은 ‘구세주’와 같았다. 특히 흥분하거나 화가 난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안한 ‘생각하는 의자’ 그리고 자제하지 못하는 아이를 붙잡고 압박하는 방법 등의 솔루션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랬던 그가 20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 2020년 방송 채널A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였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2020년대 판으로 보이는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는 문제행동 아동의 이면에는 문제 부모가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헤아려야 바뀔 수 있다는 솔루션을 내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금쪽’ 시리즈는 2021년 ‘요즘 가족 금쪽 수업’과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로 분화됐고, 또 한편 MBC ‘오은영 리포트-다큐플렉스’의 세계관은 2022년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으로 문제 부부의 솔루션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오은영 리포트-알콜 지옥’으로 발전됐다.

문제아이, 문제부부로 이어지던 솔루션은 문제적인 남녀관계를 다루는 TV조선 ‘미친. 사랑. X’, 연예인을 상담하는 KBS2 ‘오케이? 오케이!’ 그리고 바람직한 아이들과 부모의 놀이법을 다루는 ENA ‘오은영 게임’으로 번졌다. 대략 모아놓고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본인의 부부생활, 이성교제, 육아, 금주 등 지극히 사적이고 긴밀한 여러 삶의 부분들을 오은영 박사에게 내맡기고 있던 셈이다.

요리나 창업에 있어서 백종원의 존재, 반려견에 있어 강형욱의 존재,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에게 있어 한문철의 존재처럼 오은영 박사의 세계관에도 많은 평가가 따랐다. 대부분은 그의 솔루션에 새롭게 눈을 뜬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였지만, 그 문제성을 지적한 사람들도 있었고 한 쪽에서는 그의 책임 방기를 지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선 솔루션 전문가의 사례처럼 우리나라 방송에서 저명한 전문가의 존재는 쏠림 현상을 부르고, 지나친 쏠림은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문제를 만들 수밖에 없다.

사진=방송 영상 켑차사진=방송 영상 켑차
특히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 영역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이다. 그의 솔루션을 공개하는 방송들은 어쩔 수 없이 의뢰인들의 가장 감정적인 내면을 드러내야 한다. 이러한 영역이 TV를 통해 대외적으로 숨김없이 공개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례로 ‘알콜지옥’의 출연자들은 자신의 주량과 자신의 음주습관으로 일어난 가정의 파탄 그리고 자신의 허물까지 낱낱이 공개해야 했다. 이러한 형식의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안 생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대중이 가진 오은영 박사에 대한 신뢰는, 이러한 내밀한 문제를 다루는 방송치고는 상대적으로 적은 논란을 불렀다는 데 있다. 대중에 끼치는 공공선이 어쩔 수 없는 필요악보다 클 경우, 대중은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은영 박사에 많은 부분을 의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거꾸로 말하면 정책이나 시스템에서 이들을 감싸 안지 못했다는 방증이 된다.

현재 방송 중인 ‘오은영 리포트-알콜 지옥’은 상대적으로 금주에 대한 오은영 박사의 개입은 줄이고, 제작진이 시스템을 만들어 금주 캠프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사는 출연자들을 추적 중이다. 마치 오은영의 브랜드만 쓰고 자체적인 솔루션을 개발 중인 셈이다. 이렇게 오은영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오은영 박사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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