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세계관의 특성은 그 특수한 설정 말고도 분화와 재조립이 쉽다는 점이다. 마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처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이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의 콘텐츠는 동일한 세계관에서 창조된 또 다른 콘텐츠와 연결되고 분화하며 융합한다.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계관’의 위력은 최근 방송가의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작가, 방송인인 오은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은영 박사의 콘텐츠 역시 하나의 세계관에서 줄을 잇듯 ‘스핀오프’라는 형식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로 분화해갔다. 이는 타 채널의 콘텐츠와도 이어져 하나의 큰 ‘띠’를 형성했다. 가히 ‘오은영 유니버스’, ‘오은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사진=MBC
그랬던 그가 20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 2020년 방송 채널A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였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2020년대 판으로 보이는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는 문제행동 아동의 이면에는 문제 부모가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헤아려야 바뀔 수 있다는 솔루션을 내놔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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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 시리즈는 2021년 ‘요즘 가족 금쪽 수업’과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로 분화됐고, 또 한편 MBC ‘오은영 리포트-다큐플렉스’의 세계관은 2022년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으로 문제 부부의 솔루션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오은영 리포트-알콜 지옥’으로 발전됐다.
문제아이, 문제부부로 이어지던 솔루션은 문제적인 남녀관계를 다루는 TV조선 ‘미친. 사랑. X’, 연예인을 상담하는 KBS2 ‘오케이? 오케이!’ 그리고 바람직한 아이들과 부모의 놀이법을 다루는 ENA ‘오은영 게임’으로 번졌다. 대략 모아놓고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본인의 부부생활, 이성교제, 육아, 금주 등 지극히 사적이고 긴밀한 여러 삶의 부분들을 오은영 박사에게 내맡기고 있던 셈이다.
요리나 창업에 있어서 백종원의 존재, 반려견에 있어 강형욱의 존재,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에게 있어 한문철의 존재처럼 오은영 박사의 세계관에도 많은 평가가 따랐다. 대부분은 그의 솔루션에 새롭게 눈을 뜬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였지만, 그 문제성을 지적한 사람들도 있었고 한 쪽에서는 그의 책임 방기를 지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선 솔루션 전문가의 사례처럼 우리나라 방송에서 저명한 전문가의 존재는 쏠림 현상을 부르고, 지나친 쏠림은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문제를 만들 수밖에 없다.
사진=방송 영상 켑차
하지만 대중이 가진 오은영 박사에 대한 신뢰는, 이러한 내밀한 문제를 다루는 방송치고는 상대적으로 적은 논란을 불렀다는 데 있다. 대중에 끼치는 공공선이 어쩔 수 없는 필요악보다 클 경우, 대중은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은영 박사에 많은 부분을 의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거꾸로 말하면 정책이나 시스템에서 이들을 감싸 안지 못했다는 방증이 된다.
현재 방송 중인 ‘오은영 리포트-알콜 지옥’은 상대적으로 금주에 대한 오은영 박사의 개입은 줄이고, 제작진이 시스템을 만들어 금주 캠프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사는 출연자들을 추적 중이다. 마치 오은영의 브랜드만 쓰고 자체적인 솔루션을 개발 중인 셈이다. 이렇게 오은영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오은영 박사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