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 주목한 'VS', 에코처럼 남아있는 파급력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1.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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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PD(좌), 최효진 CP(우)/ 사진=엠넷정우영 PD(좌), 최효진 CP(우)/ 사진=엠넷


예로부터 음주가무의 민족이라고 불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노래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가도 좋고 때로는 '혼코노'(혼자 가는 코인 노래방)를 통해 오롯이 나의 감성에 취할 수도 있다. 노래방이라는 소재를 내세운 Mnet '초대형 노래방 서바이벌 VS'는 이러한 감성을 자극한 프로그램이다. 노래방에서 한 번쯤은 불러보고, 내가 불러보지 않았더라도 옆 방에서 누군가 불러봤을 노래가 나오니 당장이라도 노래방에 달려가고 싶어진다. 비록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VS'가 퍼뜨린 파급력은 마치 마이크의 에코처럼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달 22일 종영한 Mnet '초대형 노래방 서바이벌 VS'는 로이정(로이킴+박재정) 팀의 박종민이 우승을 차지하며 마무리됐다. '대구에서 온 스무살 김광석' 박종민은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를 보였고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달 27일 프로그램을 연출한 최효진 CP, 정우영 총연출과의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두 사람은 프로그램 연출의도부터 차기시즌에 대한 계획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VS'는 '노래방 인기차트'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듣는 음악 위주의 음원 차트와 달리 부르는 노래가 강점이 있는 '노래방 인기차트'에 주목해 '보면서 같이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 노래방을 잘 가지 않는 제작진들은 'VS'를 위해 노래방 공부를 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합격과 탈락대신 예약과 취소라는 노래방 용어가 나오고, 참가자 중에서도 더 진한 애정을 가진 참가자에게는 우선예약을 부여하는 등 노래방에서 익숙한 용어들이 활용될 수 있었다. 여기에 다양한 서바이벌 노하우를 가진 Mnet의 노하우가 모여 'VS'가 완성됐다.

"노래방이라는 아이템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그러다가 '노래방 인기순위'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음원차트와는 다른 면이 있더라고요. 듣는 노래와 부르는 노래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단순히 듣는 게 아니라 보면서 같이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결정했어요. 이 과정까지 시간이 걸렸고, 참가자 모집부터 첫 촬영까지는 두 달 만에 정리됐어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노하우를 짧은 시간에 집약해서 시작했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뒷부분을 만들었어요. 스케줄 적으로 많이 빡빡하긴 했지만,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있다 보니 그래도 완성도 있는 프로그램이 나온 것 같아요."(정우영 PD, 이하 정)



"저희가 노래방을 자주 가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오히려 공부를 많이 했어요. 회사마다 기계가 다르니 다양한 노래방도 가보고, 노래방에서 나오는 밈들도 연구했어요. 다들 노래방을 안 간 지 오래됐지만, 익숙하고 거부감없는 문화라 잘 적용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프로듀서나 참가자들도 예약·취소보다는 합격·탈락이 익숙했는데 나중에는 저에게 'PD님 이건 우선 예약감인데요'라고 말할 정도로 입에 붙어서 말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유효하게 기능한 것 같아요."(최효진 CP, 이하 최)

/사진=엠넷/사진=엠넷
노래방이라는 콘셉트가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건 1차 예선에서였다. 세트장에서 나란히 서 있는 참가자들이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기존의 오디션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선사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타 프로그램과 달리 'VS'는 참가자를 응원하고 아는 노래가 나올 때면 함께 춤추는 등 유난히 축제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에게도 전례 없는 경험이었다.


"저희가 노렸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그런 분위기가 됐어요. 한 참가자가 실수를 하면 앉아있던 분들이 그분이 다시 부를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더라고요. 찍으면서도 신기했어요."(정)

"1차 예선을 이틀 촬영했어요. 첫날 마지막 팀 쯤을 촬영하고 있을 때 못 보던 분위기고 신선한 경험 같아서 감동받아서 메모장에 적기도 했어요. 이 분위기가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래방이라는 콘셉트 때문인지, 음치가 노래를 해도 대기석에서는 '진솔하다'는 응원과 박수가 나오더라고요. 노래방이라는 콘셉트가 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날 현장에서 오신 분들께 '어제 오신 분들이 서로 응원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런 게 작용해서 합격률도 높아진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응원해 주더라고요. 또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나오다 보니 자기 차례를 기다리시는 분들도 듣는 맛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리보이 프로듀서도 처음 찍고 나서 정말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쇼미더머니'는 엄숙한 분위기에 무반주로 랩을 했는데 'VS'는 반주도 있고 마이크도 있다 보니 엄숙한 심사장이 아니라 같이 노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게 신기하다고 그러더라고요."(최)

다만, 뒤로 갈수록 노래방이라는 콘셉트는 약해졌다. 노래방의 기능을 활용한 다양한 대결이 머리 속에는 있었지만, 타이트한 스케줄 속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 역시 이러한 부분을 가장 아쉬워했다.

"회사별로 노래방 리모컨을 사진 찍어서 미션을 짜보려고도 했어요. 원래는 그 안에서 나오는 다양한 기능을 활용한 미션을 하려고도 했어요. 예를 들면 음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키 대결 같은 거죠. 이번 시즌 참가자를 남성으로 제한한 이유도, 남녀 간의 키대결은 공정하게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렇게 노래방 리모콘 기능을 활용해 보고 싶었지만, 하나하나 걷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1차 예선도 체육관에서 부스를 100대 정도 만들어서 응원하는 사람과 같이 오는 페스티벌을 만들어보려고도 했어요. 규모가 축소돼서 그렇게는 못 했는데 그건 한 번 정말 해보고 싶어요."(정)

"예전에 '슈퍼스타K'가 전국을 간 것처럼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분들이 노래방 기계로 통합하는 모습을 전국에서 내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첫 시즌이고 프로모션을 길게 하지 못해 소수의 인원만 참가했지만, 1차 미션의 분위기가 전국을 넘어 글로벌하게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프로듀서분들도 그때의 바이브가 재미있다고 말씀해주시거든요."(최)

/사진=엠넷/사진=엠넷
그럼에도 'VS'에서 등장한 노래들은 많은 노래방 애호가를 자극했다. 특히 2차 예선에서 김영석이 부른 너드 커넥션의 '그대만 있다면'이 대표적이다. 본디 노래방 애창곡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대만 있다면'은 방송 이후 단숨에 노래방 인기차트 2위 올랐고(TJ미디어 12월 월간 기준) 아직도 굳건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VS'에서 시작한 목소리가 마치 마이크의 에코처럼 전국으로 퍼진 케이스로 제작진이 정확하게 의도했던 바였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쯤에는 차트에 없었는데 최근까지도 '헤어지자 말해요' 다음 순위를 기록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까지 많이 부를 줄은 몰랐어요. 저희가 프로그램을 만든 목적 자체가 시청자들이 노래방으로 달려가서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전국민의 싱어롱 타임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 '그대만 있다면'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준 대표적인 노래인 것 같아요."(정)

대부분 아마추어인 'VS'의 참가자들이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던 건 프로듀서들의 역할도 한몫했다. 로이정(로이킴+박재정), 별소유(소유+임한별), 영광(우영+서은광), 멜로데이(김민석+영케이), 기리가든(기리보이+카더가든) 팀은 각자의 취향으로 숨겨진 원석을 발굴했고 이들이 보석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단은 노래방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분들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또 노래방 차트가 음원 차트와 다르고, 노래를 부르는 유형도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어 다섯 팀 체제를 선택했어요. 어제(12월 26일) 프로듀서들과 회식을 했는데 노래방이라는 콘셉트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르적 다양성을 경험해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본인들의 짝에도 만족하시고요."(최)

"각자의 취향이 다르다 보니, 1차 예선에서 참가자를 뽑을 때도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것 같아요. 각 프로듀서들이 뽑은 참가자가 2차 예선에서 모두 만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비슷한 사람들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참가자들이 다음 라운드까지 진출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정)

/사진=엠넷/사진=엠넷
특히나 10명의 프로듀서들은 자신의 팀이 결정된 이후로 더 많은 애정을 쏟았다. 본 방송에도 이들이 참가자들에게 애정을 쏟는 모습이 담겼지만, 제작진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 이상이었다. 제작진은 '진심을 다해준 것 같아 감동'이라며 프로듀서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처음 미팅할 때 김민석 프로듀서 같은 경우에는 합불(합격 불합격)을 평가해야 하고 참가자들을 승리로 이끌어가야 하는데 본인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더라고요. 마음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면서요. 그런데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팀이 정해진 이후에는 애정을 쏟았어요. 장우영 프로듀서도 저희한테 말도 없이 참가자 집, 녹음실에 가서 셀카로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하고요. 프로듀서 시스템을 이 정도로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참가자와 심사위원을 넘어 형동생관계로 지내는걸보고 감동받았어요. 프로듀서분들도 본인들이 이렇게 마음을 줄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로이킴 같은 경우에는 남에게 곡을 준 적도 없고 남을 위해 프로그램을 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도 새로운 개척점을 발견했다고 말하더라고요. 저희가 만든 시스템이지만, 잘 따라와 준 프로듀서분들께 감사하고 진심을 다해주신 것 같아 감동이었어요."(최)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희 참가자들 같은 경우에는 팀 체제를 통해 본인들이 음악을 계속하는데 지원군이 생긴 느낌이에요. 프로듀서분들이 '끝나도 음악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많이 하셨거든요. 단순히 우승을 떠나 더 많은 걸 얻으셨을 것 같아요."(정)

/사진=엠넷/사진=엠넷
/사진=엠넷/사진=엠넷
'VS'는 공식적으로는 'Vocal Showdown'의 약자다. 그러나 본 방송 전 예고에는 Various Singer, Various Simsa, Very Spicy, Very Shy, Very Sinna(?), Very Special 등의 다양한 변형이 등장하기도 했다. 두 제작진은 다양한 약자 중 자신에게 가장 깊게 다가온 약자를 선정하며 프로그램을 되돌아봤다.

"예고편 중에 'VERY SPICY'를 노렸던 것 같아요. 맵다는 게 단순히 자극적인 게 아니고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요즘 음악 프로그램에 노래 잘하는 사람들만 계속 나오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저희는 'SPICY'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정)

"저는 'VERY SPECIAL'이요. 밴드, 힙합 등 다양한 음악 장르의 프로그램을 경험했는데 PD로서 많은 감흥을 준 프로그램이에요. 참가자, 프로듀서들도 정말 스페셜한 경험을 많이 해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최)

'VS'의 참가자들이 부른 노래가 에코처럼 퍼져나가 전국의 노래방에 스며들었다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 참가자들과 프로듀서들의 관계 역시 여전히 남아있는 또 하나의 에코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에코는 새롭게 펼쳐질 시즌2에 대한 가능성이다. 제작진은 더욱 발전된 시즌2에 대한 구상과 함께 "확정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는 긍정적"이라며 희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구조적으로나 구성적으로나 뒤로 갈수록 무대 대결 형태로만 정리된 것 같아요. 앞에서는 노래방이라는 콘셉트를 살렸는데 그런 것을 보완하면 완성도 있는 구성이 될 것 같아요."(정)

"프로그램을 전후반으로 생각했어요. 전반전이 노래방 안에서 부르는 콘셉트였다면 후반전은 프로듀서와 만나 신곡을 가지고 무대에서 부르는 거죠. 다만 뒷 부분에서도 노래방이라는 콘셉트를 가져가고 싶었는데 빠진 게 있어요.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필요할 것 같아요."(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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