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찾은 베이징 시내 한 종합병원 소아과병동에 중국인 어린이가 할아버지로 보이는 보호자 무릎에 누워있다. 보호자는 접수번호가 공지되는 디스플레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사진=우경희 특파원
병원 로비로 들어서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약을 받는 창구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고 수납 창구에도 이에 못잖게 환자와 가족들이 줄을 서 북적였다. 기자가 입장하는 과정에서 마스크 착용을 강제받지는 않았으나 병원 내 진료인력과 환자, 환자가족 모두가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기자도 서둘러 자판기에서 마스크를 사서 쓰고, 손소독제를 짜 발랐다. 둘 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5일 찾은 베이징 시내 한 종합병원 입구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새통이었다./사진=우경희 특파원
현지 시간 기준 점심때가 돼도 모든 진료실이 가동 중이었다. 다음 순번을 앉아서 기다리지 못하고 진료실 앞에 줄을 서 발을 구르는 환자 가족들이 적잖았다. 주사실에선 간호사들이 교대로 환아들에게 수액을 주사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눕지 않고 앉아서 수액을 맞는데 환아들을 위해 설치된 주사실 겸 놀이방은 이미 가득찼다. 수액줄을 꽂은 아이들이 주사를 놓는 간호사 곁에 둘러앉아 있었다.
간호인력이 어린이의 손에 링거 주사를 놓고 있다./사진=우경희 특파원
이 병원을 가득 채운 환자들의 대부분은 보호자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 환자였다. 같은 병원 5층 성인 대상 호흡기내과 병동을 찾았다. 역시 환자들이 북적였으나 진료를 진행 중인 진료실 자체가 소아과에 비해 적었다. 병원 측에 공식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취재에 동행한 통역원은 "호흡기질환 관련 의사와 간호사들도 소아과로 이동해 진료를 진행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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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학급 절반이 호흡기질환 결석" "왜 휴교 않나"
주사실에서 링거 주사를 맞는 아이들./사진=우경희 특파원
중국 현지인 대상 학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한 중국 네티즌은 온라인 플랫폼 바이두 호흡기질환 관련 콘텐츠에 댓글로 "초등학교 한 학급의 절반 이상이 호흡기질환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 왜 수업을 중단하지 않느냐"고 지적했고, 다른 네티즌은 "내년 봄까지 빨리 휴교를 결정해야 한다"며 "또 다른 감염병 파도가 밀려오는데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동조했다.
병원과 학교 현장을 통해 확인한 대로 중국 내 호흡기질환은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었다. 특히 인플루엔자와 마이코플라스마폐렴이 문제다. 지난 11월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최근 호흡기 질환 감염 사례를 분석할 때 1~4세 아동은 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에, 5~14세 아동들은 인플루엔자 및 마이코플라스마에 주로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먼저 문제가 된 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A형 독감이다. 이후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이 확산하고 있으며 성인들의 마이코플라스마 감염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항저우(杭州) 절강대 의과대학병원은 발열관련 내원 사례가 하루 400~500건으로 평소 100여건의 4~5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저장(浙江)성 저장대 의대 역시 현지 언론을 통해 비슷한 통계를 발표했다.
코로나19 깜깜이 데자뷰, 中 정확한 통계 내놓을까
병원 로비에 약을 받기 위해 줄을 선 환자와 보호자들이 가득하다./사진=우경희 특파원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에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과 관련한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등 이미 코로나19 확산을 겪은 세계는 중국의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국가보건위원회는 이에 대해 11월 24일과 26일, 이달 2일 기자회견에서 모두 "현재 유행 중인 급성 호흡기 질환은 모두 알려진 병원체에 의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성숙한 치료법이 있다"고만 밝혔다.
거의 모든 통계와 정보가 정부의 통제를 받는 중국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2019년 초 코로나19 확산 당시에도 중국 정부는 '우한폐렴'으로 알려졌던 코로나19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염된다는, 지금으로서는 아주 상식적인 사실도 공개하지 않았다. 고 리커창 중국 총리가 발표를 관철시키면서 해당 사실이 알려졌고 비로소 주변국들이 구체적인 방역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상황은 복잡하게 돌아가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여전히 인민들에게 일상적 주의를 요구하는 수준에 그친다. 푸단대 의과대학 장원훙 교수는 최근 중국 관영 CCTV에 출연, "중복감염은 민감한 검출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수도의대 류칭위안 교수는 같은 방송에서 "인플루엔자 발병 이후 열흘 쯤 지나 마이코플라즈마가 확인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초기에 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