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때문에?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합병" 투표 95% 찬성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3.12.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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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이어 남미에서도 무력 충돌 우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가이아나 합병 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로이터=뉴스1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가이아나 합병 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로이터=뉴스1


베네수엘라가 남미 산유국 '가이아나의 영토 3분의 2를 합병하자'는 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95%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가이아나는 8년 전 석유 발견으로 주목받은 나라다. 양국과 국경을 맞댄 브라질이 국경지대에서 군사력을 늘릴 정도로 이미 긴장이 고조된 상태라 무력충돌 우려가 커진다.

'미니 산유국' 가이아나의 위기…베네수엘라 국민 95% "합병하자"
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엘비스 아모로소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날 가이아나 에세키바 지역의 합병에 찬성하는지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해 95% 찬성으로 가결시켰다고 밝혔다. 아모로소 위원장은 찬성 표가 1050만 표에 달했다고 했다. 전체 투표수, 투표율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총 인구는 약 2883만명이다.



베네수엘라는 1899년 영국 요청에 따라 파리에 있는 국제기구인 중재법원이 정해준 현재 국경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가이아나에 협상을 요구해왔다. 스페인 식민시대부터 가이아나는 베네수엘라에 속해 있었고, 현재 국경은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소 판결 당시 가이아나는 영국 식민지였고,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런데 독립 몇 달 전 영국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네수엘라와 국경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고 약속했다. 베네수엘라는 이 약속을 근거로 가이아나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가이아나는 중재법원이 정한 내용을 준수하라며 유엔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중재 실패로 사건은 ICJ(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됐다. ICJ 재판은 내년 봄쯤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 때문에?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합병" 투표 95% 찬성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반(反)제국주의를 합병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갈등의 큰 원인으로는 에세키바에 매설된 자원이 꼽힌다.

2015년 미국 거대 정유기업 엑슨모빌은 이 지역에서 대규모 유정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원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엑손모빌이 개발 중인 에세키바 스태브록 개발구에 11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엑손모빌은 스태브록 원유 생산량을 일 62만 배럴까지 끌어올릴 계획인데, 지난 9월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이 집계한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이 일 73만5000배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가이아나 인구는 약 76만명에 불과해 1인당 원유 생산량으로 세계 최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양쪽 다 물러설 곳 없어…무력충돌 가능성"
가이아나 전체 영토는 21만5000㎢. 베네수엘라가 요구하는 에세키바 지역 크기는 16만㎢에 이른다. 국토 3분의 2를 내놓으라는 베네수엘라 요구에 가이아나는 "실존적 위협"이라며 반발 중이다. 바라트 하데오 가이아나 부통령은 "크름반도 사건 이후 무슨 판단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오판인 것은 확실하다"며 이번 분쟁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강제합병에 빗대 강력 비판했다.


가이아나는 지난달 27일부터 이틀 간 미 육군 제1보안지원연대와 회동하는 등 미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가이아나가 에세키바 지역에 미군 작전을 허용했다면서 베네수엘라가 비난 성명을 발표한 바 있지만, 가이아나는 "거짓 정보"라며 부인했다.

이번 투표에 앞서 브라질은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접경지역에 레오파드 전차를 배치하는 등 만일에 대비해 군사작전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ICJ는 베네수엘라를 향해 현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해 외교협회(CFR) 전문가 폴 앙헬로는 CNN 인터뷰에서 "일촉즉발"이라고 평했다. 앙헬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며 "이 같은 선례가 마두로 대통령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라고 했다.

국제위기그룹(ICG) 소속 전문가 필 건슨은 CNN에 "권위주의 정부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애국심을 고취할 만한 소재를 찾곤 한다"며 "마두로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경제난으로 위기에 처한 마두로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위해 정치 이벤트를 벌였다는 취지다. 그는 "베네수엘라가 동맹국 지지 없이 에세키바를 침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양쪽 다 물러설 곳이 없는 입장이라 무력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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