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 RTP) 본부 건물/사진= 정진우 기자
이곳에서 만난 연구원들은 RTP가 세계 최고 혁신 클러스터라고 자부했다. RTP를 운영하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재단(Research Triangle Foundation, RTF) 관계자는 "RTP는 연구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전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몰리고 있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장착한 인재들이 서로 연구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RTP는 미국 동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주도인 롤리시(NCSU)와 듀크대학교가 있는 더럼시, UNC가 있는 채플힐 사이에 조성됐다./자료= RTF
RTP가 조성된 위치도/자료=RTF
주정부는 RTP 조성 초기 단계부터 외부 대기업 및 연구기관 유치와 같은 외생적 발전전략을 추진했다. 미국에서 톱 클래스급 대학 3개가 인접한 덕분에 우수한 인력들을 쉽게 끌어 모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기업과 연구소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주정부의 노력과 우수한 인재가 결국 지금의 RTP 근간이 됐다.
이 시각 인기 뉴스
풍부한 녹지로 둘러싸여 거대한 공원처럼 조성된 RTP는 뉴욕과 마이애미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롤리-더럼 국제공항(RDU)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자리해 이동성도 좋다. RDU에선 국내선과 국제선을 합해 하루에 400편의 비행기가 오간다. 미국의 '제2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엔 하이테크(HiTech), 애그테크(AgTech), 생명공학(BioTech) 등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군에서 IBM, SISCO, DELL, BASF, BIOGEN 등 글로벌 대기업 연구소가 있다. 앞으로 애플을 비롯해 구글도 이 곳에 연구 캠퍼스를 지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립환경위생연구소와 같은 국책 연구기관을 비롯해 벤처기업 등 모두 375개의 기관·기업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RTP에서 일하는 연구원과 직원 등은 6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기업들은 걸어서 5~10분 혹은 자동차로 10~20분 내외에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연구원들끼리 공동 연구와 협업이 쉽게 이뤄진다. RTF의 역할은 RTP에 입주한 기업간 협업을 돕고 이들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정책을 지원하는 것이다.
거대한 공원처럼 조성된 RTP 모습/사진= 정진우 기자
RTF에서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이사를 맡고 있는 잰 막탈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과 최고 수준의 인재를 노스캐롤라이나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 지역의 산업, 대학 및 인력 간의 협업을 촉진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민들에게 경제적 영향을 창출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RTP지역 인구 증가 모습./자료=RTF
주정부는 저렴한 땅값과 세금감면, 대출, 보조금, 상담 및 네트워킹 등 기업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지원했다. 이런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진다. 최근 미국 CNBC는 기업들의 비용절감 등 각종 실적을 토대로 RTP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를 '미국에서 가장 비즈니스하기 좋은 주'(America's Top State for Business)로 2년 연속 꼽았다. 연구원들의 주거비용과 생활비, 물가 등은 뉴욕, 캘리포니아 등에 비해 저렴하다. 일례로 지난 7월 기준 RTP 지역 평균 휘발유값은 1갤런 당 3달러 안팎이었지만 실리콘밸리와 LA가 있는 캘리포니아 지역은 5달러로 큰 차이가 났다. 미국 평균이 3.5달러였다.
RTP에 들어서 글로벌 대기업들. 산업별 분포도로 나타냈다./자료= RTF
이처럼 1990년대 이후 RTP의 산·학·연 협업 모델은 큰 성공을 거뒀다. 많은 기업들이 이 지역 대학 파트너인 듀크대, UNC, NCSU와 다양한 사업 기회를 만들었고 특히 NCSU 출신이 개발한 SAS(통계프로그램) 통계 및 분석 전문 지식을 적극 활용했다. RTP 관계자는 "대학에는 인재들이 넘쳤고, 소속이 다른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아이디어들이 많이 쏟아졌고, 이들의 협업이 끊임없이 이뤄졌다"며 "대기업들의 계약 연구와 임상 시험 아웃소싱 기회를 토대로 RTP는 계속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RTP에 위치한 기업들 위치도
이밖에 RTP에 있는 퍼스트 플라이트 벤처센터(FFVC)는 RTP의 창업보육센터로 벤처기업에 사무실과 연구 공간을 임대해주고 있다. 1991년 설립된 이 센터는 벤처 탄생의 요람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세계적 수준인 듀크대 병원과 UNC 병원을 필두로 한 헬스케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창업 등 연관 산업이 커지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채플힐(UNC) 저널리즘스쿨 이수만 교수는 "다양한 산업군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RTP를 찾고 있는 건 주정부의 확실한 지원과 훌륭한 연구대학, 좋은 생활여건 등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며 "RTP는 가장 성공적인 혁신 클러스터로서 훌륭한 산·학·연 협업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TP에는 신규 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사진= 정진우 기자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 혁신 클러스터 활성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혁신도시, 산업단지 등을 중심 거점으로 비수도권 14개 시·도에 1곳씩 지역 혁신 클러스터를 지정했다. 산업부는 그간 각 시·도와 함께 클러스터별 특화산업 육성에 필요한 기술개발, 기업 유치, 네트워크구축·운영 등을 지원했다. 지난 5년 간(2018~2022년) 총 6418억원(국비 3759억원, 지방비 등 2659억원)을 투입했다.
IBM 연구소 입구 모습/사진= 정진우 기자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장은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국가 R&D를 통한 기업 성장의 디딤돌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여전히 우리 기업들이 국가 R&D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게 인식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이 된 많은 기업들도 초창기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R&D를 수행하면서 연구소와 대학과의 협업을 통해 지원을 받고 성장했다. 우리나라도 성공적인 혁신 클러스터를 만들려면 결국 유기적인 산·학·연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