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해상에서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에 승선했던 한국인 선원 4명이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지 500여일이 경과된 2012년 10월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피랍선원가족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며 오열했다. /사진=뉴스1
가족들은 "피랍된 선원들의 생존이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없어 절박하다. 협상이 해결될 여지가 없어 막막하다"며 "언론보도가 매우 조심스럽지만 생사 절벽에 서 있는 가족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국민과 국가에 도움을 호소하게 됐다"고 눈물 흘렸다.
21명 선원 석방했다…한국인 4명만 빼고
2012년 10월8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앞에서 피랍 선원의 가족들이 정부에 석방을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구하는 모습. /사진=뉴스1
싱가포르 선사는 그해 11월 협상금을 주고 배와 선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한국 선원들만 풀려나지 않았다. 한국 선원들은 내륙으로 재납치돼 인질로 잡혔다. 재협상에서 해적은 여전히 사망한 해적 8명과 생포된 해적 5명에 대한 포기 대가로 보상금을 요구했다. 선사 측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외교통상부는 테러 집단이나 해적 등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불개입 원칙을 따른다는 입장이었다.
'독' 된 엠바고…"500일 동안 진전 없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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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장기피랍 상황이 2012년 8월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피랍 선원 가족들도 언론 대응에 나서기로 결심, 같은 해 10월8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을 기점으로 협상에 진전이 나타났다. 피랍 선원이 속한 선박노조도 나서 긴밀하게 협조하며 구출 방안을 모색했다. 보도 이후 협상금 역시 낮춰진 것으로 전해졌다.
피랍 선원 가족들은 정부의 보도유예 지침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가족들은 10월 기자회견에서 "언론 보도는 협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정부와 선사 쪽)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500일 동안 아무런 변화도 진전도 없었다"고 했다.
중요한 인터뷰도 나왔다.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이 되레 해적들의 납치 동기를 심어줬다는 것. 한국 선원을 납치했다고 주장한 소말리아 해적은 당시 KBS '추적60분'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그 사건(아덴만 작전)이 일어난 후 한국인들을 찾고 있었다. 친구와 친척들이 한국 군인들의 공격에 의해 죽었다. 그래서 우리가 흥분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미니호 피랍선원, 고국 땅 밟다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되어 석방된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 4명이 청해부대 강감찬호에 도착해 환영을 받는 모습. /사진=뉴스1(외교부 제공)
4일 뒤인 12월5일 오전 4시22분 대한항공 KE960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현장에서 간단한 인터뷰를 한 뒤 오전 7시30분 김해공항을 통해 부산에서 가족과 만났다.
고국 땅을 밟은 선원들은 "해적에게 잡혔을 때부터 풀려날 때까지 살해 협박이 계속됐다"며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가족의 얼굴을 실제로 보고 안아주고 싶다"며 "생활이 힘들었던 탓에 7~14㎏가량 몸무게들이 줄었다. 김치, 된장찌개, 삼겹살 등 모든 음식을 다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적이 제시한 금액은 알고 있지만 얼마가 어디에 지불됐는지 안 됐는지 여부는 전혀 모른다"며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경우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 모두가 힘쓰고 있다는 메시지가 당사자에게도 어떤 경로로든 전달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버틸 힘이 날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보상 문제에 대해 피랍자 간 형평성 문제와 당시 현행법을 들어 모든 책임을 선사가 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건강검진 등 의료지원과 임금 문제는 국토해양부 고시와 선원법에 따라 선원송출회사인 선박 회사와 싱가포르 선사에서 보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 4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인사하는 모습.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