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그러나 누구나 주나라의 문왕이 될 수는 없었다. 권력자나 부유한 사람들만이 갖고 누릴 수 있던 세상의 진귀한 물건들이 그들의 서재나 금고 밖으로 나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길이 모두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이다. 왕으로부터 궁궐을 빼앗고 왕실과 귀족, 교회가 갖고 있던 것을 거둬들여 박물관을 열었다. "근대 박물관의 탄생은 기요틴(단두대)의 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어느 학자의 말이 다소 지나치게 느껴지긴 해도 박물관의 등장이 시민사회의 성장에서 비롯된 것임은 틀림없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1947 보스톤'이란 영화를 봤다. 사실과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고 하나 영화는 내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서윤복 선수, 그리고 그의 선배이자 코치인 손기정, 남승룡 선수까지 그들이 일궈낸 보스턴 마라톤 우승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광복 직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제 우리 손으로'라는 당시 사람들이 품은 시대적 소명에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박물관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들리자 훗날 초대관장이 된 고고학자 김재원은 전쟁으로 오랫동안 닫혀 있던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향했다. 건국준비위원회의 위촉을 받아 일본인들로부터 박물관과 소장품을 접수하고 미군정청의 도움을 받아 일본인 부호들이 우리 문화재를 갖고 돌아가지 못하도록 거둬들이고 이미 일본으로 유출된 것은 되찾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까지 박물관은 일본인의 전유물이었기에 박물관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일도 중요했다. 전시를 정돈하고 일본어로 된 설명문을 우리말로 싹 바꿔 새로 문을 연 날 미군정장관 아널드 소장도 찾아와 "조선의 새로운 문화창건의 바탕이 되는 고미술 유적의 보존과 진가를 세계에 드날리는 데 앞으로 만큼은 조선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축하했고 신문들은 '민족문화의 전당'이 '태극기 아래 기쁨의 문을 열었다'며 기뻐했다. 해방되던 해 겨울, 박물관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오는 12월3일은 국립박물관의 개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