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양념감은 본디 꽃식물의 꽃, 뿌리, 열매, 씨앗, 줄기, 껍질들에서 얻는데 이 물질들은 모두 물질대사의 결과로 생긴 이차산물(二次産物)로 세포가 늙을수록 커지는 액포(液胞·vacuole) 속에 차곡차곡 넣어둔 노폐물이다. 액포는 모든 식물과 균류(菌類·fungi), 일부 원생동물과 세균에도 들었고 늙은 세포는 액포가 80% 넘게 차지하며 번번이 그 모양까지 바꾼다고 한다. 액포란 말 그대로 '막으로 둘러싸인 터질 듯이 팽팽한 작은 주머니'로 양념감 말고도 화청소(안토시아닌), 당류, 유기산, 단백질, 효소와 숱한 무기물질이 듬뿍 들었고 세포를 한껏 부풀게 하는 팽압(膨壓·turgor pressure)과 pH를 일정하게 유지케 한다.
맙소사! 그런데 동남아나 대만, 인도 등 더운 곳으로 갈수록 여러 양념이 엄청나서 너나 없이 비위(脾胃)가 제아무리 좋아도 그곳 요리에 절로 체머리를 흔든다. 아닌 게 아니라 모처럼 맛본 음식에 안절부절, 어리둥절, 기절초풍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남도 지방은 음식이 무척 짜고(소금도 양념으로 세균을 죽임) 매우며 향이 짙은 방아풀(배초향)의 잎줄기나 초피나무 열매껍질을 콩콩 찧은 가루를 물김치, 겉절이, 순대에 시도 때도 없이 막 넣어 먹는다. 냉장고가 없던 그 옛날의 한여름을 떠올려보면 추호도 새삼스럽고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설사 십 리만 떨어져도 아예 물과 바람이 다르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장가를 간 뒤에는 안타깝게도 방아풀이나 초피나무 맛을 모르고 산다. 아내가 안 먹어보고 자란 터라 그것을 꺼리니 나는 애통하게도 내내 그 맛을 잃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 입맛은 어차피 여자 손맛에 매인 것. 내 집사람이 자란 경북 청송(靑松)과 경남의 내 고향 산청(山淸)이 멀다면 멀지만 가깝다면 가까운 이웃인데 말이지. 이렇게들 입맛은 사람마다 지역에 따라 사뭇 다르며 어릴 적에 먹어본 것이 평생을 좌우한다. 그리고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기를 쓰고 동족(同族) 동향인(同鄕人)과 혼인하려 드니 무엇보다 같은 식문화(食文化)를 함께하려는 것이다. 정말이지 요놈의 만고불변, 간사한 혓바닥이 어이없게도 나라나 지역을 편 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