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팬데믹을 부인하는 이들은 누구인가[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3.11.14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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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투약은 그 자체로 범죄이지만 질병의 특성도 갖는다. 한번 투약으로도 정신행동 질환의 일종인 중독으로 이어지고 마약중독은 치료의 대상이다.

마약은 바이러스나 간균만큼이나 확산력이 강하다. 과거엔 음습한 아편굴을 통해 퍼져나갔다면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텔레그램이 주된 '전염' 통로다. '온라인'상의 전파(電波)는 빛의 속력으로 이동한다. 마약사범은 올해 들어 9월까지 2만 명을 넘었다. 지난해 연간 마약사범이 1만8395명으로 역대 최대였는데 올해 1~3분기 숫자가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마약 수사 인력이 늘거나 수사 기법에 특별한 변화가 있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급속히 늘고 있다.



2만명이란 숫자가 다가 아니다. 마약범죄는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았거나 인지됐더라도 공식 통계상 잡히지 않는 범죄가 훨씬 많다. 박성수 세명대 교수의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암수율(숨겨진 범죄 비율)이 28.57배다. 이를 대입하면 국민의 1%가 넘는 57만명이 마약 투약 등 마약 관련 범죄자라는 얘기가 된다.

작년 교통사범(구공판·구약식·불기소 등을 합한 숫자)이 27만 명이다. 드러난 교통 관련 범죄보다 숨겨진 마약 범죄가 2배 더 많다고 생각하면 마약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적게 잡은 숫자다. 마약의 특성을 잘 아는 수사 관계자들은 암수율이 많게는 100배에 이른다고 얘기한다.



본인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중력과 성적을 높여 준다고 해서 받아마신 음료가 마약일 수 있고, 클럽에서 누군가가 내 컵에 마약을 풀 수도 있다. 이선균은 불면증약인 줄 알고 마약을 먹었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우리 사회에서 마약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들어갔다고 인정해야 할 날이 멀지 않았다. 벌써 재활·치료 기능은 한계에 다다랐다. 마약 중독자를 실제 치료하는 기관은 인천 참사랑병원과 경남 국립부곡병원 2곳뿐이고, 지난해 의료 기관에서 치료받은 마약 중독자는 721명에 불과했다. 올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예산은 총 4억1000만원이 편성됐는데, 이미 상반기에 전체의 90%가 사용됐다. 앞으로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지만 건보 재정이라고 화수분이겠는가.

전국에 민간 마약재활시설은 10곳도 채 안 된다. 그나마 지난 9월 마약재활센터 '경기도다르크'가 문을 닫은 것처럼 혐오시설로 낙인찍혀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병원 응급실 입원이 불가능하고, 화장장과 빈소를 잡지 못해 5일장, 7일장을 치르는 등 사회 기능이 마비돼 패닉에 빠졌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와 달리 마약은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유일한 대비책은 마약 공급자들을 수사로 뿌리 뽑고 마약에 손을 대면 무조건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마약 수사의 난도는 높다. 거래는 온라인에 은밀하게 이뤄지고, 투약 후 수일이 지나면 신체 압수수색도 무소용이 돼버린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때는 개인의 사적 정보인 동선을 파악하고 신체를 격리하는 데 영장이 필요 없었지만, 마약 수사에는 단계별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 피의자의 인권을 철저히 지켜줘야 한다. 유아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거푸 기각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법원이 마약수사의 특수성을 더 헤아려 주 것도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마약 수사 경비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게 안타깝다. 정부는 83억1200만원을 법무부의 내년도 마약 수사 예산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예산보다 71.1% 늘어난 금액이지만 현실의 심각성에 비춰 무리한 예산은 결코 아니다. 내년도 무인교통단속·음주단속 관련 장비구매·운영 예산만 1222억7700만원인데 어쩌면 교통범죄보다 심각한 마약범죄에 대응하는 데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본다. 전 국민이 합심해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했을 때처럼, 마약 팬데믹 대응에는 여야가 없어야 한다.

누군가는 마약을 강조하는 게 다른 정치적인 이슈를 덮으려 하는 음모라고 음모론을 펴지만, 음모의 특징은 금세 발각된다는 데 있다고 움베르트 에코는 말했다. 음모라는 것은 비밀과 마찬가지로 단 한명만 알고 있어도 (잠자리에서라도) 누설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동시에 일어난 별개의 사건을 연결시켜 그럴듯한 음모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오히려 정치적 이득을 본 사례를 많이 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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