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기술혁신의 방향 재조정

머니투데이 장보형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2023.11.0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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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환경이 더욱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노령화에다 성숙경제의 수확체감 현상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각종 지정학적, 지경학적 갈등까지 겹치며 우리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 향방에 적신호가 켜졌다. 따라서 생산성 제고를 위해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크다. 땜질식 수요부양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혁신동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생산성 측면에서 기술혁신이 강력한 돌파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저 기술혁신의 수혜만을 강조하는 '테크맹신론'은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기술혁신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파급효과, 특히 경제 전반에 미치는 반향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적 경제석학으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스모글루의 진단이 주목을 끈다. 40여년 동안의 기술혁신이 소득불평등 심화, 또 전반적인 경제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신간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혁신의 효과가 기술 자체의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의 불평등 심화나 이중구조 사회의 고착화, 나아가 사회 전반의 혁신역량 저하도 그런 선택의 결과다. 기술혁신이 근로자의 역량강화나 그 기회를 확장할 새로운 직무창출보다 이윤이나 경제적 지대를 독식하고자 고용대체 및 노동강도를 강화하는데 치중한 탓이다. 오늘날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빅테크의 행태, 또 이들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 정부나 시민사회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반면 20세기 중후반까지 미국 등 세계 경제의 혁신성장 모델로 작용한 헨리 포드의 실험은 달랐다. 기술과 생산방식의 혁신이 결합된 포드시스템은 높은 임금을 기반으로 전후방 연관 직무 및 산업의 성장, 또 구매력 증대 등 광범위한 순효과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대런은 이른바 '공유된 번영'을 위해서는 빅테크 주도의 '노동절약적, 노동대체적' 기술혁신 대신 포드시스템과 같은 '노동증강적, 인간보완적' 기술혁신이 요구된다고 역설한다.



기술혁신의 이처럼 이중적인 성격과 그 영향은 사실 오래된 쟁점이다. 특히 18세기 이후 동양과 서양의 경제역전, 즉 '대분기'와 관련해 동양의 노동활용적 기술혁신과 서양의 노동절약적 기술혁신간의 대비가 그것이다. 당연히 산업혁명은 노동이 부족하고 자본이 풍부하던 서양의 몫이었고 서양의 세계 제패로 귀결됐다. 하지만 20세기 중후반 동아시아의 기적을 설명하면서는 정반대 논리가 가세했다. 부족한 자본을 대신해 풍부한 노동을 활용한 기술혁신, 곧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이 주효했던 것이다.

요즘도 저개발국에서는 첨단기술이 아니라 적정기술에 대한 요구가 크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사회에 미칠 효능이고 그 수혜를 얼마나 공평하게 또 포용적으로 공유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1세기 복합위기를 맞아 AI 등 혁신기술의 잠재력이 각광받지만 진정으로 공유된, 혹은 지속가능한 번영에는 이처럼 기술혁신을 노동증강적이고 인간보완적인 방향으로 재설정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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