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일본 센코쿠 시대 모리 모토나리(1497~1571년)란 다이묘가 있었다. 센코쿠 시대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지략이 뛰어나 히로시마현 서부에서 시작해 주코쿠 지역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는 슬하에 세 아들을 뒀는데 각기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죽기 전 모토나리는 세 아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화살을 하나씩 나눠주고 부러뜨리라고 명령했다. 모두 쉽사리 분지르자 이번에는 3개 화살을 부러뜨리라고 했다. 그러자 어느 한 명도 부러뜨리지 못했다. 모토나리는 화살 하나는 약하지만 3개가 뭉치면 강하다며 형제끼리 화합과 단결을 당부했다. 이 일화는 '3개의 화살'이라는,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이야기다. 일본 정부가 장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아베노믹스의 3대정책인 '3개의 화살'도 여기서 온 말이다. 기실 모토나리의 임종을 지킨 것은 아들 중 한 명뿐이었던 데다 이때는 이미 큰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인 까닭에 이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토나리는 평소에도 세 아들의 단합과 일족의 단결을 강조했고 또 그 지침으로 '삼자교훈장'(三子敎訓狀·세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라는 문서도 남겼다. 이런 까닭에 '3개의 화살'은 역사적 실존 여부와 별개로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재담꾼 한 명의 창작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이야기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그곳의 특색에 맞게 각각의 스토리로 다시 태어났다. 이럴 때 곧잘 나오는 것이 바로 '원조' 논쟁이다. 물론 이야기의 근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또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일지 모른다. 하지만 원조가 어디라고 해서 파생된 여러 이야기를 줄 세워놓고 순위를 매긴다거나, 혹은 가치를 절상 또는 절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레 그곳의 것이 돼버렸기 때문이요, 또 그 기원을 찾는다 해도 그 가치는 수많은 번안물이 있기에 빛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 돈이라고 하는 건 내가 버는 돈이 아니야. 쓰는 돈이지." 문화야말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어디서 기원했든 지금 누리고 즐기고 꽃 피운 사람들이야말로 그 주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