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배터리 점유율 53%(1~7월 기준 CATL 36.6%, BYD 16%)를 합작하는 두 중국 기업 간 경쟁 분위기가 심상찮다. 배터리 신제품 시장에서 BYD가 무섭게 치고 나가자 CATL은 BYD의 텃밭인 전기차 시장 진출까지 타진한다. 중국 내에서는 불필요한 출혈경쟁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중국 업체들과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는 국내 배터리사들의 시장점유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다.
(상하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쩡위친 CATL 회장이 21일 (현지시간) 상하이에서 열린 란팅 포럼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ATL 창업자 쩡위친은 일본 전자기업 TDK에서 배터리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퇴사하고 비슷한 시기인 1999년 ATL이라는 배터리사를 공동 창업했다. 나름 성공을 거두고 2005년 당시 1억달러에 친정 TDK에 매각했다.
두 사람이 중국 정부의 간택을 받은건 2011년을 전후해서다. 중국 정부는 그해 배터리를 전략산업으로 지정, 보조금 만리장성을 둘러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전기차를 팔고싶으면 핵심부품인 배터리는 중국산을 쓰고, 배터리 관련 기술도 중국 기업에 이전해주라는게 요지였다. 노골적 중국 기업 보호 우산이 펼쳐진 셈이었다.
TDK는 눈물을 머금고 쩡위친에게 다시 배터리 사업을 매각해야 했다. 쩡위친은 이때 회사 이름을 CATL로 바꿨고 BMW와 테슬라 등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전혀 다른 회사를 만들어 낸다. BYD도 2011년이 변곡점이다. 중국 정부가 BYD를 시범사업자로 선정하고 선전시내 2만대 택시를 모두 BYD로 바꾸는, 자유시장주의 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책을 단행한다. 이게 두 공룡의 진짜 탄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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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게 배터리시장 키웠지만..불붙는 경쟁 수면위로
왕촨푸 BYD 창업자가 2023년 9월 독일 뮌헨오토쇼 콘퍼런스 현장에서 강연을 청취하고 있다./사진=차이신
CATL과 BYD는 원래 니켈·코발트·망간(NCM)의 삼원계배터리를 CATL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BYD가 맡아 나름 사이좋게 지냈다. 그런데 차 가격을 내리고 싶은 고객사들의 요구 속에 CATL이 LFP에 발을 뻗었다. 초거대기업 CATL이 움직이자 LFP 시장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지난 연말 기준 중국 LFP배터리 점유율은 CATL이 43.6%, BYD가 37.1%였다.
BYD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LFP 블레이드배터리를 통해 차근히 점유율을 늘리더니 올 상반기 점유율 1위를 뺏어왔다. BYD가 43.6%, CATL이 34.5%다. 해외 영토도 넓혀간다. 한국의 기아와 쌍용차도 BYD의 블레이드배터리를 채용했고, 테슬라는 지난달 유럽에서 블레이드배터리를 단 모델을 선보였다.
BYD는 블레이드배터리를 내놓을 당시 배터리 강철못 관통실험을 했는데, 이 때 이미 양사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해석도 있다. 세 종류의 배터리를 못으로 뚫었고 CATL의 주력 격인 삼원계 배터리는 거의 폭발했다. BYD의 LFP블레이드배터리는 불이 붙지 않았다. 테스트는 중국 언론을 대상으로 수차례 반복됐다. 가뜩이나 안전성이 콤플렉스이던 CATL이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통실험 당시 BYD가 배포한 자료. 왼쪽이 삼원계, 가운데가 LFP, 오른쪽이 LPF 블레이드배터리다./사진=머니투데이DB
CATL이 계속해서 LFP 투자를 확대하면 가뜩이나 공급과잉인 저가배터리 가격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는 벌어질거라 여겼던 CATL 과 BYD 간 가격경쟁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얘기다.
車도 만드는 BYD의 여유..CATL이 빼들 카드는?
BYD는 1~8월 중국서만 179만1000대의 전기차 및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을 판매했는데, 전년 대비 82.1% 늘어난 숫자다. CATL이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고도 결국 BYD를 넘기 어려울거라는 전망이 나오는건 이 텃밭 차이 때문이다. 배터리 뿐 아니다. UBS증권은 최근 '차량분해보고서'를 냈는데 BYD의 자동차 부품 내재화율이 최대 75%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CATL도 이 상황을 두고만 볼 것 같진 않다. 아직은 '컴퓨터 시장 내 인텔 같은 지위'를 추구한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CATL은 2대주주로 투자한 전기차 스타트업 아바타에 선싱 배터리를 탑재한다고 8월 밝혔다. CTC(셀 투 섀시) 기술도 개발 중이다. 자동차 뼈대에 촘촘히 배터리를 탑재, 주행거리를 급격히 늘리는 기술이다. 언제든 자동차를 만들기만 하면 되는 단계다.
여력도 있다. CATL은 최근 8세대 생산라인 기술을 시연했는데, 공정 인력은 70% 줄어들고 생산속도는 300% 빨라졌다. 물론 과장된 지표일 수 있으며 수율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효율 향상은 이뤄냈다는게 중론이다. 본격 가격경쟁을 벌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CATL과 BYD의 경쟁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 구조개편으로 이어진다면 최근 LFP 시장 진출을 타진 중인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시장점유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전기차 회사 10개가 탄생할때 배터리 회사 5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판이다. 값싼 범용 배터리 시장 구조조정이 이뤄진다면 한국 3사의 속내도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중국 내에선 단기적으로 CATL과 BYD의 집안싸움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 현지 배터리업체 고위 관계자는 중국 언론에 "테슬라가 대형(4680) 원통형 배터리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걸 제대로 만드는 중국 기업이 있느냐"며 "집안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국 등 경쟁국 배터리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혁명적 신기술이 상용화되면 CATL과 BYD의 큰 덩치는 오히려 족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