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그러면 안된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09.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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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코일철근/사진제공=동국제강 홈페이지 캡쳐코일철근/사진제공=동국제강 홈페이지 캡쳐


포스코가 이달부터 코일철근 시장의 상업생산에 나서면서 철강업계에 말들이 많다. 철강업계의 맏형인 포스코가 고로를 기반으로 고급철강 시장이 아닌 전기로 기반 생산업체들의 시장인 철근 시장에 진출한데 대한 논란이다. 철강업계의 골목상권에 철강공룡인 포스코가 진출했다는 비난이 주를 이룬다.

포스코는 이번 코일철근 시장 진출을 두고 ▷포스코의 생산물량이 국내 전체 철근시장의 1% 미만으로 규모가 작은 점 ▷포스코이앤씨 등 자회사 경쟁입찰에 납품할 목적인 점 ▷로스율 감소 등 건설사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를 들어 신규 시장 진입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다른 기업이었다면 이런 시장논리를 내세울 때 달리 이론을 달 게 없다.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통해 시장의 순기능을 강화하겠다는데 누가 막겠나. 또한 동국제강과 대한제강 두 회사의 과점 시장인 코일철근 시장에 수요자인 건설업계가 제3의 사업자를 필요로 한다는데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참여자가 포스코라고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산업의 쌀이자 뼈대인 철강산업의 맏형인 포스코는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쇳물에 녹아있는 기업이다. 비록 민영화됐지만 다른 기업과는 다른 사명이 있는 기업이다.



1968년 포스코 탄생 당시에 앞서 설립된 조선선재(현 동국제강 (11,280원 ▼280 -2.42%), 1949년)나 대한상사(대한제강 (14,020원 ▲120 +0.86%), 1954년) 등 대한민국 초기 철강업체들이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철에 의존하던 한국 철강 산업사에서 '쇳물독립'의 꿈을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불어넣었던 인물 중 한 사람이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자다. 일본으로부터 많은 철강 자료를 확보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그다.

그에게 박 대통령이 일관제철소를 지으라고 하자 "일관제철소는 민간사업자가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한다"며 포항제철소의 설립을 강력히 요청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를 기화로 한일청구권 대금 1억달러를 전용해 철강기술 제공과 현물 등으로 설립된 곳이 지금 포스코의 포항제철소다.


포스코의 탄생에 기여했던 기업들이 자리잡은 50만톤 규모의 작은 국내 코일철근 시장에 조강생산능력 4000만톤 규모인 포스코가 진출해 그들의 목줄을 죄는 것은 맏형의 역할이 아니다. 더구나 탄소배출이 5배나 많은 고로를 통해 전기로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더 문제다.

최정우 회장이 이끄는 포스코는 더더욱 그러면 안된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의 3고로가 동시에 멈춰 섰을 때 전 철강인들이 나서 고로의 재가동에 힘을 보탰다. 당시 고로가 멈춘 포항제철소를 보며 한 철강인은 "나라를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할 정도로 철강업계에서 포스코의 상징성은 크다.

포스코가 경쟁자였다면 현대제철이나 동국제강 등 철강업계가 굳이 팔을 걷어 고로 재가동을 적극 도울 필요가 있었겠나. 당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에 잠긴 포항제철소의 정상화에 기여했다. 현대제철은 제품 운반기를 지원했고, 동국제강은 인장시험기 리셋을 위한 엔지니어를 양보했다. 전국의 양수기를 끌어모아 물을 퍼내는데 힘을 보탠 협력사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재가동한 시설로 코일철근을 만들어내는 포스코를 향한 제강 업계의 심정은 '맏형에 대한 배신감'이다.

철강인들의 마음 속에 포스코는 든든한 맏형이자 고향과도 같다. 쇳물독립의 선봉장인 고로제철소인 포스코가 '좋은 쇳물'을 양산해 공급하면, 다른 기업들은 좋은 철강제품을 만들어 자동차나 전자제품, 건설현장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역할이다.

포스코의 말처럼 전체 철근 시장의 1% 밖에 되지 않는 '푼돈' 시장에 뛰어들어 철강 생태계를 무너트리는 '황소개구리'가 되서는 안된다.
'Green Tomorrow, with POSCO'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친환경의 미래로 함께 가야 하는 신철강시대에 포스코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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