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대형 은행, 대출경쟁 자제하라"

머니투데이 이용안 기자, 권화순 기자 2023.09.2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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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최근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린 일부 은행에 "외연확대 경쟁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대출 자산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과정에서 대출재원 마련을 위해 고금리 수신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당국은 대신 은행채 발행한도 확대와 LCR(유동성 커버리지비율)규제 현행 유지 등 업계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21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KB·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자금 담당 부행장들을 만나 과도한 자산 확대는 가급적 피해달라는 의견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최근 기업대출 영업에 힘을 쏟고 있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경쟁적으로 자산을 확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집단대출 형태로 확대한 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우려했다.

실제로 최근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60조원 이상 늘어났다. 기업대출 잔액도 지난해 10월 가계대출을 앞서더니 지난달에는 52.33%까지 비중이 늘어났다. 1년전만해도 가계대출 비중이 50.33%로 기업대출보다 높았다. 우리은행은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가계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린 농협은행은 지난 7월 이후 50년 만기 주담대를 2조8000억원 취급했다. 이는 은행권 전체 8조3000억원 가운데 33.7%로 전체 1위다. 농협은행은 차주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적용되기 이전에 취급한 집단대출에 50년 만기 주담대를 적용하면서 이를 많이 늘렸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대출경쟁 자제를 당부한 이유는 자산경쟁이 자칫 수신경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출재원을 마련하기 위헤 무리하게 예금금리나 은행채 발행 금리를 상향할 수 있다. 자금 마련이 급해진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예금금리와 은행채 금리를 높이면 자금시장 전체가 요동치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해 래고랜드 사태이후 수신전쟁이 벌어지면서 전 금융권에서 연 5% 이상의 고금리 예금을 확대했다. 다음달부터 100조원에 달하는 고금리 예금의 만기가 집중 도래한다. 은행이 자금확보를 위해 예금금리를 높이면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도 연쇄적으로 금리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다.


은행들이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 채권시장에서 은행채 쏠림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여신전문금융채(여전채)나 회사채의 금리도 영향을 받는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만 25조8800억원의 은행채가 발행됐다. 이는 당시 월별 기준 역대 최대 규모였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일부 규제는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날 5대은행 임원과의 회의에서 은행들은 은행채 발행한도를 늘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은행채 발행한도는 만기 도래 규모의 125%까지 허용되고 있다. LCR 규제는 당분간 추가적으로 강화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부터 이 비율을 95%로 상향했는데 금융권에선 내년부터 100%로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LCR 규제가 강화되면 은행들은 추가적으로 현금성 자산을 늘려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자산을 늘리면 결국 자금 확보 경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며 "불필요하게 자금 확보를 유도하는 규제 강화에도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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