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규제만 풀면 CVC 활성화될까

머니투데이 김태현 기자 2023.09.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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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활성화를 가로막는 건 '규제'가 아니고 '문화' 입니다."

최근 만난 한 벤처캐피탈(VC) 대표 A씨의 말이다. CVC와 독립계 VC를 넘나들며 십여년 넘게 벤처투자를 이어온 A씨는 최근 정부의 CVC 규제완화 움직임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말 정부는 글로벌 창업대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는 CVC 활성화 방안도 포함됐다. 현재 40%인 CVC 펀드의 외부출자 허용비율을 확대하고, 총 자산의 20% 이내인 해외투자 비율를 늘려 CVC 신규투자를 2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외부출자 허용과 해외투자 비율 완화는 CVC 업계에서 오랫동안 요청해왔던 규제 완화책이다. CVC가 좀 더 규모있게 펀드를 결성하고, 좋은 딜을 발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규제 완화가 되다면 CVC는 정부의 기대처럼 활성화될 수 있을까. 벤처투자 업계는 이에 물음표를 던진다. CVC만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CVC 투자의 기본 원칙은 전략적 투자(SI)다.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심사역과 관리역 등 CVC 인력 외 펀드 주요 출자자(LP)인 지주사와 계열사 임직원 등 투자 외적 측면의 '시어머니'들이 난입하게 된다.

SI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인력이지만, 때로 도를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벤처투자 경험이 전무한 계열사 대표가 무리하게 특정 스타트업을 투자하라고 요구하거나 시너지가 기대되는 스타트업을 추천했음에도 업무 과중을 이유로 투자를 무작정 반대만 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는 고정된 연봉 테이블이다. VC에 고급 인력들이 몰리는 이유는 파격적인 성과급 때문이다. 기본 급여 외 10억~20억원의 성과급 챙기는 심사역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주사의 수많은 계열사 중 하나인 CVC에서 이같은 성과급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십억원의 성과급이 지급됐을 때 다른 계열사에서 쏟아져 나올 불만을 지주사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반 지주회사의 CVC 설립을 허용한지 2년이 지났다. 이후 많은 CVC들이 생겼지만, 이렇다 할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CVC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CVC가 진정한 진정한 의미의 벤처투자 생태계 일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CVC의 목적과 역할을 스스로 재정립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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