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원 前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그러나 미국을 보면 안전성과 원전성능(이용률)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1990년대 70%의 이용률, 연평균 불시 정지가 2.5회로 성능과 안전이 우리보다 낮은 수준이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90% 이상의 이용률을 유지하고 있다. 불시 정지는 0.3회/년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리스크(위험도)를 나타내는 노심 손상확률은 1990년대 초반 대비 최근 1/10 수준으로 떨어져 안전성도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1990년 이전에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결정론적 방법, 즉, 사전에 정해진 규칙 및 기준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안전성 확보에 필요충분조건인 것으로 간주돼왔다. 그러나 1960년대 원자력발전소를 처음 설계할 때 기본이 되었던 이 접근방법은 모든 설비를 다 동등하게 중요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상대적 중요도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1990년 후반부터 규제기관과 산업계의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리스크 정보활용을 강조해왔다. 특히 규제기관에서는 사업자의 선택사항으로 리스크 정보활용을 권장했고, 이에 필요한 평가방법론과 규제지침 등을 개발해 제공·활용하게 했다. 원전 현장에서 과거 종사자들 스스로 규정 준수에만 집착했던 것이 이제는 어느 것이 리스크 관점에서 중요도가 큰 것인지를 판단하고, 이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안전중시환경 즉, 안전문화도 크게 개선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리스크 정보활용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원자력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변화가 우선되어야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자리매김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규제자와 산업계가 20년 이상 꾸준히 같이 노력했기에 오늘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국내 원전에서 리스크 정보활용이 현장에 뿌리내리려면 규제기관의 적극적인 의지와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 최고경영층의 리더십, 장기간에 걸친 일관된 정책과 종사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에 대한 기대수준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도 필요조건인 안전성과 함께 충분조건인 경제성도 잡아야 한다.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어 리스크 정보를 적극 활용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리스크 정보활용 안전중심 운영(Risk-informed Safety-focused Operation, RISFO) 정책'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박윤원 前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