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자 정하고 들러리" 백신 입찰담합…32개사에 과징금 409억

머니투데이 세종=유재희 기자 2023.07.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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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12일 서울 용산구 김내과의원에서 의료진이 동절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가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2022.12.1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12일 서울 용산구 김내과의원에서 의료진이 동절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가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2022.12.1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플루엔자·간염·결핵 등 정부의 백신구매 입찰에서 약 7년간 담합행위를 벌인 업체 32곳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적발됐다.

글로벌 백신제조사·백신총판·의약품 도매상 등이 담합행위에 가담했다. 이들은 170개 입찰에서 높은 수준의 낙찰가를 형성하기 위해 낙찰예정자를 미리 정하고 들러리를 세우는 데 합의했다.

공정위는 20일 국가가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백신구매 입찰에서 낙찰예정자, 들러리 등을 합의한 업체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409억원(잠정금액)을 부과했다.



입찰 담합에 가담한 사업자는 △백신을 제조하는 백신제조사(글락소스미스클라인) △백신제조사와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한 6개 백신총판(광동제약·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유한양행·한국백신판매) △이를 유통하는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총 32곳이다.

조사 결과 이들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이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담합 대상 백신은 모두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백신이다. △인플루엔자 △간염 △결핵 △파상풍 △자궁경부암(서바릭스·가다실) △폐렴구균 백신(신플로릭스·프리베나) 등 24개 품목에 이른다.

공정위는 이 사건의 경우 담합 협의도 매우 용이했다고 설명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낙찰예정자는 들러리를 쉽게 섭외할 수 있었고 서로 역할이 정해지면 투찰가격에 대한 별도의 논의도 필요 없었다"면서 "낙찰예정자는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낙찰받기 위해 기초금액 100% 수준으로 투찰하고 들러리는 그보다 높은 금액으로 투찰해 탈락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낙찰자 정하고 들러리" 백신 입찰담합…32개사에 과징금 409억
해당 담합은 정부 조달방식 변화에 맞춰 계획됐다.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하는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제3자 단가 계약방식(정부가 전체 백신 물량의 5-10% 정도였던 보건소 물량만 구매)'에서 '정부총량구매방식(정부가 연간 백신 전체 물량을 전부 구매)'으로 변경했다.


한 위원장은 "기존 '제3자단가계약방식'에선 의약품도매상끼리 낙찰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바꿔가면서 담합했지만 '정부총량구매방식'에선 낙찰예정자가 의약품도매상이 아니라 백신총판이 된 것"이라며 "의약품도매상은 구매방식 변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들러리 역할을 수행했고 백신총판은 들러리 역할은 하지 않았다"고 서명했다.

실제 이번 사건의 유일한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자신의 백신(서바릭스, 신플로릭스) 총판인 유한양행과 광동제약을 위해 직접 의약품도매상을 들러리로 섭외했다.

특히 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 등 3개사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2011년 6월 공정위의 제재를 받았음에도 해당 입찰담합에 다시 가담해 제재받게 됐다.

결과적으로 담합으로 낙찰받은 147건 중 117건(약 80%)은 낙찰률이 100% 이상이다.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낙찰률이 대부분 100%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이들의 담합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보고 △의약품도매상인 에이치원메디 115억5200만원 △한국백신판매 71억9500만원 △정동코퍼레이션 43억400만원 △백신총판인 녹십자 20억3500만원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 3억5100만원 등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편 이번 조사가 진행된 것은 검찰이 2019년 공정위로부터 고발된 BCG 백신공급 관련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건을 수사 중에 이러한 혐의를 인지해 공정위에 고발요청했고 관련 자료를 제공하면서다.

한 위원장은 "공정위가 조사하지 않았거나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 검찰이 고발요청한 사건은 △2019년 현대중공업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건 △올해 교복 구매 입찰담합 건 △가구 입찰담합 건이 있다"면서 "검찰과 업무 협조를 잘하고 있고 전속고발제의 큰 틀이 지켜지면서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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