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삼고초려 마다않는 중국인들, 한국 기술이 샌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3.06.2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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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했는데도 세 번이나 더 찾아왔다던데요. 금액도 계속 올려 부르고요."

최근 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협력사 관계자는 중국향(向) 기술유출에 대해 이야기하다 쓴웃음을 지었다. 이 관계자와 함께 일하는 한 연구원은 지난해 거액을 줄 테니 중국에 생산 기술을 넘길 것을 종용받았다고 했다. 연구원의 거절에도 중국 기업 직원이 여러 차례 찾아와 돈가방을 내밀었다. 해당 연구원 외에도 다른 기업 관계자들이 수차례 비슷한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반도체 종사자들이 체감하는 중국 기업의 기술 유출 시도는 끈질기고, 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인에 대해 갖는 선입견인 '오만하고, 콧대가 높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찾아와 한국 임직원들을 구슬린다. 거액의 보상금은 물론 자녀, 배우자의 학비와 생활비 지원까지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중국이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수십년·수천억원을 들여 개발하는 반도체 기술을 수십억원이라는 푼돈에 훔쳐올 수 있다. 한국 인력들에게 수백억원을 주더라도 훨씬 싸고 빠르다. 이렇게 기술이 넘어가면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이 받는다. 국정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 피해 규모는 약 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임직원들이 유혹에 넘어가기도 쉽다. 잠깐 눈을 질끈 감으면 10~20년치 연봉이 통장에 꽂힌다. 적발되더라도 사법부가 대부분 집행유예나 무죄를 선고한다. 안 할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렵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첨단산업특위에서 "일반 형사 사건 무죄율이 1%인데 기술 유출 범죄 무죄율은 19.3%로 20배나 더 높다"라고 지적할 정도다.



기술 유출이 잇따르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처벌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긍정적인 변화다. 아무리 회사 출입과 자료 유출을 통제해도 머릿속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기 때문에 기업들의 문단속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강력한 처벌을 부과해야 한다. 간첩죄를 적용하는 대만이나 범죄 수익을 환수하고 벌금까지 부과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의 한 반도체 대기업 관계자는 "기술 유출은 국가를 상대로 한 사기"라고 말했다. 기업과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솜방망이를 버려야 한다.

오진영 기자수첩 사진 /사진=오진영오진영 기자수첩 사진 /사진=오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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