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투자 신고서 'U턴' 깐깐해진 금감원에 IPO기업 '끙끙'

머니투데이 이사민 기자 2023.06.2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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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IPO(기업공개)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증권신고서가 수정에 수정을 반복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예전보다 더 깐깐하게 신고서를 심사하는데다 시장상황에 따라 공모가를 변경해야 하는 일도 잦아졌기 때문이다. 작은 수정사항으로도 연쇄효과가 나타나면서 상장일정이 계속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수요예측, 일반청약이 뒤로 밀리고 몸값이 낮아지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는 게 IPO 기업들과 증권사들의 고심이다.

일정 밀리고, 공모가 낮추고…증권신고서 '죄다' 고친다
21일 머니투데이가 집계한 결과 올해 상반기에 상장(재상장,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코넥스시장 제외)한 30개 기업 가운데 증권신고서를 정정한 업체는 28곳이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이 증권신고서 고친 가운데 에스바이오메딕스 (33,050원 ▼7,450 -18.40%)나라셀라 (4,710원 ▲30 +0.64%)는 무려 4번을 정정하며 공모 일정이 최대 한 달 이상 연기됐다. 한주라이트메탈 (2,095원 ▼25 -1.18%), 미래반도체 (18,360원 0.00%), 진영 (3,335원 ▼50 -1.48%), 큐라티스 (1,528원 ▼42 -2.68%), 프로테옴텍 (2,790원 ▲5 +0.18%) 등 5곳도 증권신고서를 3번 고쳤다.

증권신고서 내용을 보강하는 단순 작업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이 과정에서 공모 일정을 미루는 경우도 발생했다. 씨유박스 (5,550원 ▲240 +4.52%)처럼 공모 일정을 최소 하루 연기하는 사례에서부터 틸론처럼 3달 넘게 밀리는 경우도 나왔다.



코스닥 이전상장을 노리는 틸론은 지난 19일 증권신고서를 2차 정정해 수요예측 일정을 3주 뒤로 미뤘다. 앞서 틸론은 지난 3월에도 금융감독원의 정정 요청을 받고 일정이 3개월 뒤로 밀린 바 있다.

몸값을 낮추는 사례도 꽤 나왔다. 틸론은 당초 2만5000~3만원에 달했던 공모가 밴드가 1차 정정에서 2만3000~2만8000원으로, 2차에선 1만6000~2만5000원으로 대폭 낮아졌다. 그 외에도 공모가 산정 관련 논란이 불거졌던 나라셀라를 비롯해 프로테옴텍 등도 공모가를 하향 조정했다.

금감원의 '투자자 보호'...발행사·주관사·거래소는 '고심'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진=뉴스1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진=뉴스1
업계에선 감독당국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예년보다 더 깐깐하게 증권신고서를 심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증권신고서가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인 만큼 기술적인 오류나 내용 보강으로 인한 정정 사례는 나올 수 있지만 올해처럼 빈번하게 공모 일정이 미뤄지거나 공모가를 조정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한 증권사의 IPO 부문 관계자 A씨는 "증권신고서 정정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금감원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금감원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기 때문에 일정이 미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의 IPO 담당자 B씨는 "예전에는 증권신고서 정정이 나오는 게 대형 사고였지만 요즘은 정정을 안 하면 '대박'"이라며 "금감원에서 투자자 보호 쪽에 신경 쓰고 IPO 생태계도 너무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일구 문채이스자산운용 대표는 "고금리에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IPO 시장도 어려워지자 감독당국도 공모가를 더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며 "시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비교 기업이 있거나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투자자 입장에선 증권신고서가 정확하게 정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장예비심사를 진행한 한국거래소는 난처해지는 수밖에 없다. 특히 공모 일정이 연기되며 한날에 청약하는 경우도 왕왕 생겨 자금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하는 발행사와 주관사 입장에선 자금 경쟁이 더 치열해지기 때문에 고민이다.

A씨는 "거래소가 심사를 아무리 까다롭게 하더라도 상장 건수는 결국 거래소의 실적이지만 감독당국인 금감원은 그렇지 않다"며 "금감원은 시장 과열될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놓고 공모가가 너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며 시장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공모가라는 가격 역시 시장, 즉 투자자들이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인데 계속 당국 눈치를 봐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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