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수단 악용... 자사주 강제 소각, 보유 한도 설정해야"

머니투데이 정혜윤 기자 2023.06.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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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에서 축사를 통해 자사주 제도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정책 방향에 대해 밝혔다./사진제공=금융위원회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에서 축사를 통해 자사주 제도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정책 방향에 대해 밝혔다./사진제공=금융위원회


자사주를 강제로 소각하거나 보유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기주식 관련 남용 여지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당국은 대주주 지배력 확대·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은 현행 자사주 제도를 손 볼 계획이다.

금융위원회는 5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상장법인의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자사주는 회사가 본인이 발행한 주식을 재취득해 보관하는 주식을 말한다. 회사 금고에 보관돼 있다는 의미에서 금고주라고도 불린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효과적인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라는 시각과 대주주의 지배력 확대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엇갈린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사주 취득은 1992년부터 상장회사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허용됐다. 자사주는 효과적인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다.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면 실질적으로 발행 주식 수가 감소돼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발행 주식 수가 감소해 주당 기업가치가 상승하고 주가 상승을 견인한다.

하지만 대주주가 지배력을 확대하거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이 관행적으로 허용되면서 최대주주가 추가 출연 없이도 지배력이 확대되는 '자사주 마법'이 문제로 제기됐다.

인적분할 추진 회사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해당 자사주에 대해 신설회사 신주를 배정받는다. 대주주는 배정된 신주만큼 신설회사에 대해 간접적인 지배력을 확보하는 셈이다.


또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자사주 맞교환' 과정에서 의결권이 부활하면서 일반주주의 지분이 희석된다. 건전한 경영권 경쟁도 저해될 우려도 제기된다.

김 부위원장은 "우리 기업들이 주주환원을 위한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인 편이라는 의견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자사주를 일정 기간 보유한 후 시장에 재매각하기 때문이다.

일정 규모 이상 자사주 취득을 금지하고 이를 초과하면 소각 또는 매각하도록 하는 독일 사례와 대비된다. 영국·일본·미국도 자사주를 자유롭게 취득하더라도 인적분할시에는 신주 배정을 금지한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사진제공=금융위원회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사진제공=금융위원회
이날 '자기주식 제도의 현황과 개선 과제'를 주제로 발표를 맡은 정준혁 서울대 교수도 "우리나라에서 합병과 분할시 자사주에 신주 배정 권리를 인정하는 점, 판례 등에서 자사주 처분과 신주 발행을 다르게 취급하는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는 자사주에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자사주 처분을 신규 발행과 동일하게 취급해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하고 활용할 실익이 크지 않아서다.

정 교수는 "자사주의 보유 한도를 설정하거나 강제 소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자사주 보유를 10%까지만 허용하는데 이사회 권한 남용 방지보다는 채권자 보호, 자본 충실 등 복합적인 고려에 따라 결정했다. 혹은 자기주식 관련 남용 여지를 방지하기 위해 강제 소각하는 방안도 있다.

정 교수는 "이외 다른 나라 입법례처럼 자기주식의 권리를 정지하고 자기주식 처분을 신주발행과 같게 취급하면 된다는 입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기주식을 처분할 때 신주 발행과 동일한 절차를 적용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득과 달리 자기주식 처분에는 별다른 절차, 요건 통제가 없고 주주평등의 원칙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주요국가들이 자기주식 처분과 신주 발행을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과 다른 조치다.

그는 "합병·분할시 신주 배정을 포함한 자기주식 관련 권리를 정지하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국가 중 합병·분할을 포함해 자기주식에 대해 주주권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이외 자기주식의 취득이나 처분 등 투자자 정보를 공시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정 교수는 "자기주식 처분과 합병·분할시 신주배정 여부는 시장에서 주목하는 정도에 비해 공시 수준이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상장법인의 자사주 제도가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정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 정부는 자사주가 사실상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돼 온 측면이 있어 앞으로 주주 보호와 기업의 실질적 수요를 균형있게 고려한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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