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빵집 규제 10년, 더 기울어진 운동장

머니투데이 김진형 산업2부장 2023.06.0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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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점포는 직전년도 점포수의 2% 까지만 확대할 수 있다. 새 점포는 동네 빵집과 500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

2013년 제과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시작된 '빵집 규제'의 골자다. 2019년 제과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해제됐지만 이후엔 파리바게트, 뚜레쥬르와 대한제과협회간 자율협약이란 형태로 규제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빵집 규제 10년, 빵 시장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출점 규제를 받고 있는 파리바게트는 전국에 3400여개 매장을 보유한 제빵 프랜차이즈 1위, 뚜레쥬르는 1300여개 가맹점을 보유한 2위다. 빵집 프랜차이즈 시장의 1, 2위는 고착됐다. 파리바게트가 잘해서 1위를 수성한게 아니다. 직전년도 점포수의 2%까지만 신규 출점이 가능하기 때문에 2위가 1위를 역전할 방법이 없다.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따라 잡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없는 시장이다. 국내에서 시장을 확대할 방법이 없으니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가 해외로 눈을 돌려 열심히 달러를 벌어온다는 것을 규제의 효과라고 봐야 할까.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손발을 묶어 놓았지만 동네 구석구석 자리한 편의점들은 빵 판매를 늘리고 있다. 편의점 숫자는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 가맹점을 합친 것보다 10배 많은 5만개에 달한다. 지난해 편의점 최고 히트상품 중 하나로 꼽히는 CU의 연세크림빵은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이 3000만개를 넘는다. 하루 평균 6만개씩 팔렸다. GS25의 베이커리 브랜드 '브레디크'는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400만개를 넘었다.

스타벅스 같은 커피 전문점은 어떤가. 커피 사고 빵 따로 사는 시대가 아니다. 커피 전문점들은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베어커리 판매 매장을 넓히고 있다. 쿠팡, 컬리 같은 온라인 유통 채널들도 마찬가지다. 오늘 저녁 주문하면 내일 새벽 로켓배송과 샛별배송으로 현관문 앞에 가져다 준다. 내일 아침에 먹을 식빵을 사러 500미터 걸어가느니 쇼파에 누워 쿠팡이나 컬리에 밤에 주문하는게 낫다.

빵 판매 채널 중 제과점인 베이커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한 반면 대형마트, 온라인의 비중은 높아졌다는 aT(농수산식품유통공사) 통계는 달라진 빵 시장을 증명한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간판을 걸었을 뿐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 가맹점을 운영하는 점주들도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에겐 편의점이나 마트, 온라인 쇼핑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존재이니 이제 CU와 이마트, 쿠팡의 빵 판매를 제한하자고 해야 할 판이다.

대기업 빵집과 동네 빵집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규제였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운동장은 균형이 잡혔는가. 오히려 곳곳이 패이고 솟아올라 더 기울어졌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제도와 규제를 지적하려는게 아니다. 산업을 진흥하려는 정책은 선행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규제가 후행하는건 숙명적이다. 문제는 변화를 알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방치다. 경제민주화 깃발을 들고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했던 정치권력이나 선출권력의 요구라며 규제를 만들어낸 공무원들이나 시장이 변한 것을 알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전통시장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대형마트 의무휴업도 10년이 지난 지난해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논란이 있었지만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거나 영업시간 이후 온라인 주문과 배송을 풀어야 한다는 쪽으로 공감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제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의무휴업일을 바꿨다.

빵 시장이 달라졌다고 해서 '빵집 규제를 풀어야 한다'가 무조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 규제의 효과, 소비자 후생에 미친 영향 등을 짚어보고 재점검해야 한다는 명분은 된다. 강산도 변하는 10년이 지났으면 그럴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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