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놀면 뭐하니', 유재석이 이제 뭔가 보여줄 때다

머니투데이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5.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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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놀면 뭐하니' 방송 영상 캡처사진출처='놀면 뭐하니' 방송 영상 캡처


MBC 간판 예능 ‘놀면 뭐하니?’를 둘러싼 여론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이제 감지했다면 더 큰 문제다.

자기 복제라는 챗바퀴 안에서 뛰고 있는 ‘놀면 뭐하니?’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는 꽤 오래 전부터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급물살을 탄 이유는 27일 방송된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방송인 이경규가 ‘폐지’라는 금기어를 꺼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예능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놀면 뭐하니?’가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묵과하다간 폐지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 탓이다.



‘놀면 뭐하니?’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뻔한 자기복제다. 심지어 이경규가 참여한 편 역시 과거 ‘무한도전’의 예능총회를 떠올리게 한다.

‘놀면 뭐하니?’는 기본적으로 ‘무한도전’에 젖줄을 대고 탄생한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한도전’을 이끌었던 방송인 유재석과 김태호 PD가 의기투합했다. 초창기 ‘놀면 뭐하니?’는 ‘릴레이 카메라’를 비롯해 여러 기획을 시도했다. 반응은 미지근했다. ‘무한도전’의 영광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두 사람은 ‘부캐릭터’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냈다. 이를 ‘무한도전’의 필승 방정식이었던 음악 예능과 접목시켰다.



‘무한도전’은 강변북로 가요제, 서해안대로 가요제를 비롯해 HOT 재결성기,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등 음악을 소재로 다룬 기획을 내세울 때마다 엄청난 폭발력을 과시했다. 음원 성적도 뛰어났다. 이는 곧 MBC의 수익으로 귀결됐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일종의 ‘치트키’였다.

'놀면 뭐하니' 전성기 시절 유재석의 부캐 지미유, 사진출처=방송 영상 캡처'놀면 뭐하니' 전성기 시절 유재석의 부캐 지미유, 사진출처=방송 영상 캡처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재석과 김 PD는 ‘놀면 뭐하니?’에서 다시금 승부수를 띄웠다. ‘무한도전’의 여러 멤버가 유재석 1인으로 줄어든 대신, 유재석에게 여러 인격을 부여했다. 각종 부캐릭터들이 등장했고, ‘유재석 유니버스’는 성공을 거뒀다. 대한민국 트로트 열풍에 기름을 부은 유산슬을 비롯해, 싹쓰리의 유두래곤, 환불원정대를 이끈 지미유 등 유재석은 변화무쌍하게 움직였다. 김 PD의 기획력과 유재석의 캐릭터 소화력은 환상의 조합을 이루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렇게 생명력을 지속하던 ‘놀면 뭐하니?’는 김 PD가 떠나면서 약점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아이템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반응은 오지 않았다. 몇몇 음악 예능은 재탕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나마 성과를 보인 WGS워너비는 남성 버전인 MSG워너비에서 성별만 바꿔놓았을 뿐이다. 형식이나 구성, 연출 역시 차별화가 없다. 지지부진한 반응 속에 ‘놀면 뭐하니?’는 또 음악을 꺼내들었다. 이미주와 박진주가 함께 한 주주시크릿이다. 타 아이템에 비해 의미있는 성적을 거뒀다지만 앞선 화제성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항간에는 유재석을 중심에 세운 부캐릭터 세계관이 진부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변덕 심한 대중의 당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렇다고 대중을 탓할 순 없다. 결국 제작진은 과거로의 회귀를 결심했다. 정준하, 하하 등 ‘무한도전’ 멤버들을 다시 불러 왔고, 이미주와 신봉선에 이이경과 박진주까지 합류하며 7인 체제가 완성됐다. 하지만 ‘무한도전’과 같은 쫀쫀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한도전’을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놀면 뭐하니?’의 다인 체제는 기시감만 불러 일으킬 뿐, 새로운 재미를 주기는 어려웠다.

한때 10% 안팎을 오가던 ‘놀면 뭐하니?’의 시청률은 4%대를 전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하락세는,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끄는 수장인 PD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무한도전’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상파 3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2000년 중반 시작됐지만 시청률은 5% 언저리였다. 하지만 김 PD가 천천히 각 캐릭터를 매만지고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비로소 ‘무한도전’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후 장기 프로젝트와 단기 프로젝트를 적절히 안배하며 10년 넘게 이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역량은 ‘놀면 뭐하니?’에서도 발휘됐다.

이런 김 PD가 빠진 후 ‘놀면 뭐하니?’는 표류하고 있다. 자기 복제라는 키워드에 포함되는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아이템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자기 복제할 때 가장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진출처='놀면 뭐하니' 방송 영상 캡처사진출처='놀면 뭐하니' 방송 영상 캡처
이런 위기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을 유재석은 이경규에게 물었다. "시청률이 안 나올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경규의 답은 간결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폐지하는 것이다." 이 대답 끝에 출연진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이경규는 "일단 패널로 잘 하는 분들을 초대해야 한다. 일단 나라든지. ‘놀면 뭐하니?’가 4% 나오는데 내가 나오면 한 8%까지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이경규가 특유의 독설을 섞은 농담을 건넸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여론과 언론은 그 농담을 그리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저변에는 ‘정말 ‘놀면 뭐하니?’ 폐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연출자였던 박창훈 PD가 책임 프로듀서(CP)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무한도전’에서 ‘놀면 뭐하니?’에 이르기까지 이 프로그램들을 이끌던 두 축은 김태호 PD와 유재석이었다. 여기서 김 PD가 빠졌다. 그러면 누구의 어깨가 가장 무거워질까? 당연히 유재석이다. 박창훈 PD에게 모든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미다. ‘놀면 뭐하니?’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당연히 유재석이다. 과연 유재석의 동의없이 박 PD가 홀로 결정하고 추진한 프로젝트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박 PD가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것이라면 그가 PD보다 직급상 더 높은 CP로 올라가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 숙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주인공은 유재석이다. 대중 역시 유재석을 믿고 ‘놀면 뭐하니?’를 선택하는 것이다. 김태호 PD가 떠난 이 프로그램을 맡은 후속 PD를 믿고 기대를 걸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결국 유재석이 보여줘야 할 때다. 제목 그대로 ‘놀면 뭐하니?’ 싶은 마음으로 무엇이든 하자고 시작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 시대다. 재미없는데 참아주는 시청자는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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