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엄마 흉기로 찌른 아들…범인 찾아낸 경찰 기지

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2023.05.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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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산남지구대 원종훈 경사

편집자주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산남지구대 원종훈 경사 모습. /사진=원종훈 경사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산남지구대 원종훈 경사 모습. /사진=원종훈 경사


40대 아들이 어머니를 흉기로 찌르고 도주했다.

지난달 21일 오후 7시26분쯤.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주택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흉기에 찔린 어머니는 119에 직접 신고했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어머니는 '혼자 넘어져서 다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상처를 이상하게 여긴 의사가 경찰에 '흉기에 찔린 것으로 보인다'고 신고해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범인을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범행 직후 아들은 차를 몰고 도주했다. 경찰은 신고 대응 최고 단계인 '코드제로'를 발령하고 수배차량검색시스템(WASS)으로 범인의 차를 쫓고 쫓았다. 용의자 차량이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곡반정동에서 망포동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 포착됐다. 이후 경찰은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 공조 요청을 내렸고 다음날인 22일 오후 12시41분쯤 순찰차 8대, 관할팀장, 상황관리방 등 30명의 경찰이 투입됐다.



아파트 단지와 근처 하천, 주차장까지 이곳 저곳을 수색했지만 용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날 오후 4시쯤엔 인근 관할 순찰차도 투입하기로 했다. 당시 현장에 투입된 경찰이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산남지구대 소속 원종훈 경사다.

"4시간 동안 지상에 없었다?" 그러면 남은 곳은 단 한 곳
CCTV 관제센터에서 포착된 범인의 차량(왼). 청색에 캐나피를 두르고 있는 특이한 모양을 띄고 있다. 원 경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범인의 차량을 발견했다(오)/ 사진=원종훈 경사 CCTV 관제센터에서 포착된 범인의 차량(왼). 청색에 캐나피를 두르고 있는 특이한 모양을 띄고 있다. 원 경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범인의 차량을 발견했다(오)/ 사진=원종훈 경사


당시 원 경사가 알고 있는 정보는 2가지였다. 범인이 탄 승용차 종류와 마지막으로 찍힌 핸드폰 위칫값. CCTV 관제센터에서 공개한 사진을 보면 범인의 차량은 흔하지 않은 청색을 띠고 있다. 특이한 색임에도 4시간동안 지상에서 발견이 되지 않았다면 결국 남은 곳은 한 곳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지하주차장.

용의자 핸드폰이 마지막으로 찍힌 곳은 한 사거리 교차로 방면이었다. 당시 자동차 진행 방향을 보면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루트는 직진 또는 우회전 뿐이었다. 원 경사는 "직진을 했다면 CCTV에 찍혀야 했는데 그런 장면은 없었다"며 "그러면 범인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우회전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위칫값이 찍힌 곳을 보면 주변에는 유흥 상권과 아파트 1단지, 2단지가 있었다. 범인이 지하에 숨었다고 한다면 유흥 상권보다는 아파트 단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원 경사는 "1단지 아파트는 마지막 위칫값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경찰들도 이미 둘러봤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러면 남아있는 2단지를 구석구석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베테랑]엄마 흉기로 찌른 아들…범인 찾아낸 경찰 기지
2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선 순간 낯익은 차량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청색에 특이한 모양을 한 캐스퍼 차량이었다. 그는 "차를 보자마자 '악' 소리를 질렀다"며 "아파트에 1800세대가 살 정도로 워낙 넓은 공간이었는데 비교적 쉽게 찾아냈다.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차량 출입 기록을 분석해 범인이 머물고 있는 동호수를 빠르게 파악했다. 동료 경찰들과 함께 범인이 머물고 있는 집 앞에서 대기할 때 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긴장했다. 원 경사는 "경찰관이긴 하지만 피의자가 흉기를 가졌다고 하면 당연히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범인이 방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안전하게만 검거하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 순간 피의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경찰은 빠르게 수갑을 채워 그를 경찰서로 인계했다. 당시 시간대가 오후 5시54분이었다. 원 경사가 현장에 투입된지 단 2시간 만에 범인을 찾아낸 셈이다.

그는 "실제로 범인을 눈 앞에서 보고 검거했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며 "물론 짜릿한 마음도 컸고 개인적인 성취감도 컸다"고 말했다. 현재 범인은 존속살해미수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그의 빠른 상황 판단력,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원종훈 경사가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사이버팀에서 근무했을 때 모습. /사진=원종훈 경사 원종훈 경사가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사이버팀에서 근무했을 때 모습. /사진=원종훈 경사
올해로 경찰 10년차인 원 경사는 지구대, 유치장 업무, 호송 업무, 사이버팀 등을 거쳐 지난해 이곳 산남지구대로 왔다.

그는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사이버팀에서 근무할 때 장기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이버팀 특성상 이미 벌어진 사건을 1~2개월동안 추적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당시 범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행동 패턴을 보이는지, 다음 행동은 어떻게 될지 등을 예상하는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사이버팀에서 배웠던 경험들이 노하우가 돼 이번 사건에도 도움을 준 셈이다.

산남지구대에서 생활한지도 1년6개월이 넘은 그는 지역 주민들과 소통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원 경사는 "가끔씩 지역 주민들이 찾아와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며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고 하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원 경사는 그만의 무기인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한 학생의 물건을 찾아줬다. 그는 "당시 학생이 무선 이어폰을 잃어버렸다고 찾아왔다"며 "무선 이어폰이 휴대폰과 연동이 돼 GPS 위칫값을 잡을 수 있었다. 처음 물건을 잃어버렸던 곳을 중심으로 GPS 신호 강도가 센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가장 반응이 컸던 한 곳을 특정해서 물건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경찰이 되는 것이다. 그는 최근 경찰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이 보도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원 경사는 "경찰로서 최소한 위법한 행동은 하지 말자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시민에게도, 경찰 조직에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당당한 그런 멋진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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