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엽 소풍 대표 /사진=이민하
9개월 전과 비교해 180도 달라진 시장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 한둘이 아니다. 곳곳에서 앓다 못해 죽는 소리가 들린다. 투자 쪽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인공지능이나 기후테크 영역에는 자금이 몰리지만 다른 영역은 상황이 다르다. 그간 높은 수익을 자랑한 산업이나 포트폴리오 대부분이 반 토막 났고 내년 시장에 대한 전망이 대부분 부정적인 가운데 자금을 약속한 출자자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출자자들 역시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그간 내가 만난 창업가들은 대부분 욕망의 집합체였다. 그 방향은 돈, 명예, 사회적 가치 등으로 다양했지만 그 강도만큼은 한결같이 단단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도 욕망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욕망을 현실로 만들어낼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한 창업가들은 늘 존재하는 법이며 욕망을 좇는 투자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는 창업가들의 욕망을 증폭하며, 때로는 그 욕망을 꺼뜨리기도 하는 것이 투자자들의 업이라지만 창업가에 대한 기대감은 시장 상황과 반대로 갈수록 커진다. 자연스럽게 투자기준은 더 엄격해진다. 서로의 욕망을 맞춰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시장 상황이 어려운 지금과 같은 시기에도 역설적으로 더 큰 욕망을 가진 창업가를 찾는다.
투자자라 하더라도 창업가들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으며, 또 창업가가 가진 욕망의 크기를 뛰어넘을 수도 없다. 창업가들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존재다. 종종 창업가와 그 비즈니스를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느낌일 뿐이다. 어찌 보면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큰 욕망에 올라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방향이나 집중력을 높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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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어려워도 창업가들이 더 큰 욕망을 품게 하는 것, 그것만큼은 멈춰서는 안 된다. 욕망하기를 멈추면 혁신도 멈춘다. 창업가와 투자자간에 지나치게 벌어져버린 욕망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창업가들의 욕망을 끌어올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큰 욕망들이 창업가들 사이에서 싹을 틔우도록 가꿔야 한다. 큰 욕망에서 큰 혁신이 나오는 법이니까.
애석하게도 9개월 만에 만난 창업자에게 투자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간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를 설명하던 창업자가 가진 그 욕망의 크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또 날카로워보였다. 그 창업가와 헤어지며 홀로 다짐했다. 이 다음에 창업하실 때는 꼭 투자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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