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성근위축증 2형 환자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남은 아이, 신형진씨(39)와 그의 어머니. 무려 33년을 기다려 치료제가 나왔고, 9번을 맞으며 기적처럼 나아지는 걸 경험했다. 그러나 건강보험 급여 중단으로 치료제를 더는 맞을 수 없게 됐다./사진=신형진씨 제공
같은 병을 앓으며 마음을 기대던 친구 몇몇이 있었다.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아이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살아 남은 뒤에도 희망은 적었다.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어느 병원에 가도 "방법이 없다, 진행될 거다"란 말만 들었다. 몹쓸 희귀난치병이었다.
눈을 깜빡여 글을 쓴다. 남들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그 힘듦을 다 감내하고 박사 과정까지 마친 형진씨. 일도 하고 나라에 세금도 낸다.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고유하고 귀중한 존재다./사진=신형진씨 제공
33년만에 '치료제'가 나왔다
척수성근위축증(SMA) 환자들에게 '기적' 같은, 거의 유일한 치료제인 스핀라자. 한 번 맞는데 1억원, 1년에 3번은 맞아야 하는 고가의 약이라 건강보험 급여가 필수적이다./사진=스핀라자 홈페이지
하늘이 주는 큰 선물이라 여겼다. 형진씨 같은 환우들에게, 또 몸과 마음을 갈아넣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애썼던 환우 가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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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을 오래 견디어준 몸에 투여했다. 마침내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말했다.
"굳었던 근육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네요."
PC 화면을 보고 있는 신형진씨. 그는 안구 마우스로 눈을 깜빡여 글을 작성한다./사진=신형진씨 제공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형진씨는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었다. 매일 조금씩 더 나빠지는 삶이었기에. 병은 그칠 줄을 몰랐기에. 그러나 주사를 맞고 처음 숨이 더 나아지며, 희망이란 단어를 품었다.
'치료제'를 도로 빼앗아갔다
'하늘의 선물' 같았던 주사를 맞을 수 없게 됐단 통보를 받게 됐다. 형진씨의 하늘이 무너졌다./사진=신형진씨 제공
다행히 스핀라자는 2019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덕분에 1억원짜리 주사를 600만원에 맞을 수 있었다. 그 역시 금액이 크지만 어쩌랴. 형진씨도 주사를 아홉번 맞았다. 좋아질 수 있다는 것, 하다못해 유지라도 한다는 것. 수십 년간 상상하기 힘들었던 그 기적을 위해서.
열번째 주사를 맞으러 가기 전이었다. 형진씨는 건강보험 급여 심사에서 탈락했단 통보를 받았다. 더는 하늘의 선물 같았던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심지어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 통보.
돌연 선물은 사라지고, 형진씨의 하늘이 노랗게 무너져 내렸다.
앉기, 구르기, 점프하기…그걸로 점수 매겨 '치료제' 준다
치료제를 계속 맞으려면 시험을 봐야 한다. 치료가 효과가 있단 걸 환자 스스로 계속 증명해야 하는 거다. 그 척도 중 하나가 해머스미스 평가 기준이다. 사진은 이중 하나인 '뛰기'. 어느 정도를 뛰는지에 따라 점수를 0점, 1점, 2점으로 나눠 매긴다. 문제는 척수성근위축증이 일찍 발병한 '1형 환자' 등은 이 동작을 사실상 하기 어렵단 거다./사진=해머스미스 평가 기준
탈락한 이들을 위해, 같은 병을 앓는 청년들이 나섰다. 연대해 목소릴 내고 있다. 급여 심사 기준은 잘못됐다고, 바꾸라고. SMA(척수성근위축증) 청년 스핀라자 TF(태스크포스)가 그들이다. 정혜인 TF 팀장과 김서연 TF 대외협력부장을 만나 얘길 들었다. 김 부장은 "저희가 아니면 목소릴 내주지 않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선 이유를 말했다.
왜 떨어진 걸까. 치료제를 맞아도 '운동 기능'이 유지 또는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단 게 이유란다. 24개월 이상 환자는 '앉기'나 '구르기', '점프하기', '계단 오르기' 등 운동 능력을 평가한다. 해머스미스(HFMSE)란 평가 기준이다. 이에 따라, 운동 능력이 최소 유지되거나 나아져야 하는 거다. 두 번 연속으로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건강보험 급여에서 탈락시킨다. 치료제 효과가 없다고 보는 거다.
치료제를 계속 맞으려면 시험을 봐야 한다. 치료가 효과가 있단 걸 환자 스스로 계속 증명해야 하는 거다. 그 척도 중 하나가 해머스미스 평가 기준이다. 사진은 이중 하나인 '계단 오르기'. 몇 개의 계단을 오르는지에 따라 점수를 0점, 1점, 2점으로 나눠 매긴다. 문제는 척수성근위축증이 일찍 발병한 '1형 환자' 등은 이 동작을 사실상 하기 어렵단 거다./사진=해머스미스 평가 기준
그러나 TF는 "퇴행성 질환인 SMA는 개선이 없어도,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효과적인 것"이라며 "일본, 프랑스는 별도 효과를 증명하지 않아도 의사 판단으로 급여 유지를 결정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주사 맞고, 아빠에게 출근 인사 시작했는데"…13살 서연이도 '탈락'
호흡기에 기대어 누워 있는 서연양과 그의 아버지 정호씨. 서연양은 척수성근위축증 1형 환자다. 호흡 근육이 약해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그리고 살아 남았다. 그런 그에게 치료제를 계속 맞게 해주는 일, 그 기준은 그리 빡빡해야할지./사진=윤정호씨 제공
날벼락 같은 전화가 온 건 올해 2월이었다. 더는 치료 주사를 맞을 수 없단 연락이었다. 아버지 정호씨는 "서연이는 1형 환자인데 해머스미스(HFMSE)로는 평가 점수가 0점이라, 운동 기능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심평원에서 판단했다"고 했다. 쉽게 말해,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중엔 중증인 '1형' 환자를 앉기나 구르기, 점프하기, 계단 오르기 등으로 점수를 매겨 평가해 0점을 줬단 거다.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 그 목소리를 듣고 쌔근쌔근 잠든 딸. 이 평범한 행복을 유지하게 해줄 치료제는 세상에 있으나, 그게 효과가 있는지 입증해야만 맞을 수 있다./사진=윤정호씨 제공
"치료제를 맞고 서연이는 힘찬 목소리로 소릴 질러 의사 표현도 했습니다. 손목을 흔들어 아빠에게 출근 인사도 해줬고요. 무릎을 세워주면 좌우로 다릴 흔들어 보고, 손가락도 꼼지락꼼지락 움직여봅니다. 심평원 공무원들이 생각하기엔 미미한 움직임으로 보이나요. 삶과 죽음을 가를 큰 변화입니다, 1형 환자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태어난 딸, 서연양과 그의 아버지 정호씨./사진=윤정호씨 제공
척수성근위축증 2형 환자인 정혜인 SMA 청년 스핀라자 TF 팀장. 치료제를 아직 맞고 있음에도, 탈락한 환우들을 위해 가장 앞에 서서 목소릴 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기자 회견 때의 모습./사진=정혜인 TF 팀장
"아프고 싶어 환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은 없습니다. 값비싼 약가지만…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