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첫 단추 잘못 꿴 노란봉투법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2023.05.1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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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사진=뉴스1(아름다운 재단 제공)노란봉투./사진=뉴스1(아름다운 재단 제공)


"첫 단추부터 잘못됐고, 처음부터 손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한 경제단체 임원)

결정하고 나면 다시 돌이키기 힘든 일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무심코 내린 결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한 '노란봉투법' 얘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60일 넘게 계류된 노란봉투법은 본회의 직권회부(직회부) 대상 법안이다.

현장에서 만난 재계 관계자들은 노란봉투법이 명문화되면, 노사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노란봉투법은 손질해서 되는 법이 아니라 철회해야 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늘리고, 노동조합(이하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당초 '파업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쪽으로 흘러 갔다. 불법행위가 있더라도, 사업주는 노조에게 아무런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불법 쟁의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자칫 불법을 조장하고 장려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원·하청구조를 뛰어넘는 파업도 가능하다. 일례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견·중소기업 근로자가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대기업에 교섭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사용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파업 만능주의가 확산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반면 사용자의 권리는 뒷전이다. 재계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이외에 사업주의 협상력이 없고, 재산권까지 침해받는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회원사 12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노사관계 전망조사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불법 쟁의행위 증가·상시화 등이 벌어질 것이란 응답이 96.3%에 달했다.

합법적인 노조의 파업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불법행위까지 죄를 묻지 않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잘 못 끼운 첫 단추를 제대로 맞추는데 드는 비용과 노력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이재윤 기자./사진=머니투데이DB이재윤 기자./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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