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가 무슨 소용?"…개미들, 무더기 하한가 종목 '싹쓸이'

머니투데이 홍순빈 기자 2023.05.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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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發 셀럽 주식방 게이트]-124

삼천리, 서울가스, 세방, 다우데이타…

연일 하한가로 증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들 종목의 하락세가 진정되고 있다. 하지만 여진은 계속된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주식 투자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 종목이 시장에서 저평가된 '가치주'로 평가받았는데 그럴싸한 스토리로 포장된 주가조작 일당의 먹잇감이 돼서다.

그간 이 종목들을 조심하라는 의견이 서울 여의도 증권가 안팎에서 나왔으나 투자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도 개인투자자들이 이 종목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쓸어 담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기업을 발굴하는 가치주 투자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한다.



"가치주가 무슨 소용?"…개미들, 무더기 하한가 종목 '싹쓸이'


"下, 下, 下, 下!" 가치주도 폭락했다…루보사태와 다른 점은?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천리 (90,900원 ▼100 -0.11%)는 전 거래일보다 8100원(5.73%) 내린 13만33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선광 (17,860원 ▼170 -0.94%)(7.61%), 대성홀딩스 (8,940원 ▼60 -0.67%)(5.57%), 세방 (11,950원 ▲180 +1.53%)(3.92%), 다우데이타 (12,170원 ▲100 +0.83%)(3.73%), 서울가스 (56,800원 ▼100 -0.18%)(3.63%) 등도 하락 마감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날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삼천리(870억원), 다우데이타(600억원), 하림지주(460억원), 대성홀딩스(330억원) 등을 순매수했다.

2007년 루보 주가조작 사태와 다르게 이 종목들은 공통적으로 그간 시장에서 가치주로 평가받았다. 가치주란 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뜻하며 기업의 적정 가치보다 주가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다.



삼천리는 한국가스공사 (26,850원 0.00%)에서 천연가스를 받아 경기, 인천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매년 일정한 주당배당금(DPS)을 지급하고 자본유보율도 높아 도시가스업체 중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받았다. 이후 '천연가스 가격 상승→도시가스 가격 인상→영업이익 증가'란 메커니즘으로 수익이 는다는 기대감에 지난해에만 주가가 4배 이상 뛰었다.

하림지주도 비슷하다. 닭고기 회사로 알려진 하림지주도 그간 저평가를 받다가 자회사인 팬오션 (4,070원 ▼75 -1.81%)의 실적 개선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올 초부터 주가가 올랐다. 팬오션의 주력인 벌크선이 발틱운임지수(BDI)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중국의 리오프닝(경기 재개)으로 BDI가 상승할 걸로 예상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팬오션이 담당하는 운송 부문의 매출액은 하림지주 전체의 약 42.82%를 차지한다.

다른 종목들도 각각의 이유로 저평가됐다는 분석과 함께 주가가 우상향했다. 이번 하한가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라덕연 H투자자문업체 대표도 가치주를 발견해 매수 후 보유하는 전략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소시에테제네랄증권(SG)발(發)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 의혹 핵심으로 지목된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사진=뉴시스 제공소시에테제네랄증권(SG)발(發)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 의혹 핵심으로 지목된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사진=뉴시스 제공
"가치주인데 너무 비싸"…분석도 포기한 여의도 애널리스트들
여의도 증권가에선 그간 이 종목들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너무 높다는 이유에서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삼천리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냈다. 목표주가는 11만원, 투자의견은 각각 '보유', '비중축소(매도)'였다.

내용 역시 경고성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낸 분석보고서에서 삼천리의 실적과 주가가 모두 과거로 돌아갈 거로 예상했다. 또 그는 "세계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삼천리의 자산가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라"고 했다.

아예 분석 자체를 포기한 애널리스트들도 있었다. 한 대형 증권사에서 가스/유틸리티 분석을 담당하는 A씨는 "시가총액 규모가 작고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명확지 않아 관련 기업분석에 선뜻 나설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증권사 스몰캡(소형주) 분석을 담당하는 B씨도 "지난해 동안 도시가스 기업들의 주가 추이를 면밀히 지켜봤지만 건드릴 수 없었다"고 했다.

시장 안팎에선 이번 사태로 가치주에 대한 회의감이 나오고 있으나 증시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불안정한 증시 상황에서 여전히 가치주를 발굴해 투자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이번 사태로 가치투자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현상에 대해선 안타깝지만 낮은 PBR(주가순자산비율)을 갖고 있거나 시장에서 싸게 방치된 가치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이어 "다만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높아지면 일정 부분 수익을 보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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