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폭행 SNS 생중계로 전파되는데…규제 전무한 현실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2023.05.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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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청소년을 중심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극단적 선택이나 폭행 등 범죄 행위를 생중계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지만 현행법상 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3시55분쯤 10대 여학생 2명이 서울 한남대교 인근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나 극단적 선택 과정을 SNS로 생중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친구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한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면서 실제 투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지난달 16일 19층 건물 옥상에서 10대 여학생이 뛰어내리면서 해당 장면을 SNS 생중계로 송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 대구에서는 중학생 2명이 동급생을 모텔에 불러 강제로 옷을 벗기고 성추행하는 모습을 SNS로 생중계해 논란이 일었다. 영상에는 가해 학생들이 욕설하며 피해자의 뺨을 내리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이 같은 부적절한 행동을 SNS를 통해 생중계하는 원인으로 '과시욕'을 꼽았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투신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관음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연쇄 살인범 중 살인을 예고하거나 시신을 어디에 유기할 거라고 미리 알려주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극단적 선택 과정을 보여주며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잘못 표출될 때 이런 범죄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SNS 생중계가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곽 교수는 "자살이라는 행동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동반 자살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며 "나와 함께 (자살)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사람은 사전에 암시를 준다"며 "자신도 모르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편집 없이 범죄 행위가 송출되면서 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역삼동에서 10대 여학생이 투신한 사건이 SNS 생중계된 이후 경찰에 접수된 '극단적 선택' 관련 신고가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9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112에 접수된 자살 관련 신고는 지난달 1~16일 일평균과 비교해 17~24일 30.1% 늘었다.


김 교수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해당 영상을 보고 실제 행동에 나설 수도 있고 범죄 행위가 다른 방식으로 학습돼 동물 학대 등 다른 범죄 행위 생중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법상 SNS를 통한 생중계는 방송법이 아닌 통신법에서 다루고 있어 규제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방송법은 사전에 방송 내용 등을 규제하지만 통신은 사전 규제에서 제외돼 있다.

범죄 행위가 SNS를 통해 생중계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없다면 사후 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개인 채널에서 하는 생중계를 기술적으로 미리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영상이 (이차적으로 가공되는 등) 계속 남아 있지 않도록 책임을 묻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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