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달러 위에 쌓이는 지푸라기를 주시하라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23.04.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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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 /로이터=뉴스1미국 달러 /로이터=뉴스1


최근 중국 위안화가 국제 결제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21일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과 결제할 때" 위안화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3월28일에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프랑스의 토탈에너지에서 아랍에미리트(UAE)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며 위안화로 결제했다. 국제 LNG 결제에서 위안화가 사용되기는 처음이다.



3월29일에는 브라질 무역투자진흥청이 브라질과 중국간 거래에서 달러화 대신 브라질 헤알화와 위안화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위안화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미국 언론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 언론인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서 연달아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지난주에 이에 대한 사설이나 논평, 칼럼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실제로 위안화의 이같은 영향력 확대가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에 어떤 타격을 미칠 조짐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치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중국의 시도들은 달러 패권이라는 낙타 등에 깃털처럼 가벼운 지푸라기를 하나 더 얹는 것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영어 속담에 '마지막 지푸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It'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는 것이 있다. 낙타 등에 가벼운 지푸라기를 하나씩 올려 놓는 것이 낙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기존과 같은 지푸라기를 하나 더 얹었을 뿐인데 낙타 등이 부러지고 만다는 의미다.

분명한 사실은 달러 패권이라는 낙타 등에 지푸라기가 점점 더 많이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72%에서 최근엔 59%로 낮아졌다.


유럽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지난해 발표한 무역 송장에 관한 연구 결과에서 무역 송장에서 위안화 사용이 유로화 사용을 넘어섰다며 "중국의 자본계정 개방도가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 2000억달러의 위안화 역외시장이 이미 형성돼 위안화가 "중국의 무역 및 지급에 관한 송장 발행과 결제"에 사용되고 있다며 달러화 단일 기축통화 체제가 수년 내에 다극화 기축통화 체제로 바뀔 수 있다고 예측했다. 위안화가 달러화를 완전히 대체하진 못해도 달러화 사용 비중을 줄이며 달러화의 독점적 기축통화 체제에 균열을 낼 수는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에스와르 프리사드 코넬대 국제무역정책 교수는 2015년 국내에 번역된 '달러 트렙'이라는 책에서 막대한 규모의 글로벌 금융자본이 미국 국채를 포함한 달러화 자산에 묶여 있기 때문에 설사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달러화가 붕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달러화의 붕괴는 달러화 자산의 붕괴를 의미하며 이는 미국만이 아니라 달러화 자산을 보유한 전세계 각국에 재앙이기 때문에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인 질리안 테트는 지난 3월31일 칼럼에서 "미국을 괴롭히는 재정 문제를 고려할 때 달러화는 지금 당장 미인대회에서 우승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지만 네트워크 효과와 유로화 및 위안화 자본시장이 각각 얕고 폐쇄적이란 이유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은 여전히 달러화가 매우 추악한 세상에서 가장 덜 추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불안정한 균형이 영원할 수는 없다.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만고불변의 체제는 없었다. 가벼운 지푸라기들이 쌓이면 낙타 등이 부러질 날이 올 수 있다. 미국의 천문학적인 부채도 낙타 등에 놓인 지푸라기 중 하나다.

문제는 미국이 매년 막대한 규모의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를 국채 발행을 통해 메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달러화가 독점하던 기축통화 지위를 위안화 등 다른 통화와 나눠 갖는 것만으로도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영어엔 지푸라기가 들어가는 또 다른 관용구가 있다. "지푸라기 하나가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보여준다"(A straw shows which way the wind blows)는 것이다.

달러 패권에서 약간의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국가 경제는 물론 기업 경영과 개인의 투자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는 만큼 전세계 통화 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낙타 등에 쌓이는 미국 부채와 중국의 도전이라는 '지푸라기'들, 국제 통화 질서에 부는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들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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