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오마카세 위해, 오늘은 학식 오픈런

머니투데이 김지성 기자 2023.03.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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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푸른솔문화관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구매하기 위해 줄 서 있다.   경희대는 이날부터 학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일 100명분 내외의 아침밥을 1000원에 판매한다. /사진=뉴스1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푸른솔문화관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구매하기 위해 줄 서 있다. 경희대는 이날부터 학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일 100명분 내외의 아침밥을 1000원에 판매한다. /사진=뉴스1


#. 직장인 박모씨(31)는 도시락을 챙겨 출근한다. 국밥 한 그릇에 1만원을 넘은 고물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대신 두어달에 한번씩 '스강신청'(스시+수강신청)을 한다. 이름난 맛집 예약은 경쟁이 치열한 대학 수강신청만큼 어렵다는 데서 만들어진 말이다. 박씨는 "자주는 못 먹지만 이렇게 가끔 스시 오마카세를 먹으면 그동안 아껴쓴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경기 불황 속 '짠테크'(짜다+재테크)와 '플렉스'가 공존한다. 대학생은 1000원짜리 학식을, 직장인은 저렴한 구내식당을 찾지만 한편으로 한끼에 10만원을 웃도는 각종 오마카세(맡김 차림)가 동시에 인기를 끈다. 전문가들은 다소 모순돼 보이는 이 같은 소비 행태를 두고 고물가 시대에 젊은 세대가 나름의 행복을 찾는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30일 총학생회 연합 단체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에 따르면 전국 48개 대학 학생 2076명을 대상으로 한 '등록금·생활비 인상에 대한 전국 대학생 인식조사'에서 응답자 95.1%가 최근 물가 인상을 체감한다고 답했다. 물가 인상으로 가장 부담되는 지출 항목으로는 '식비'가 56.1%로 가장 많았다. 물가 상승 이후 가장 먼저 줄인 지출 항목도 '식비'가 77.2%로 1위였다.

이에 대학가에서는 학생 식당 '오픈런'이 벌어진다. 단돈 1000원으로 아침밥을 해결할 수 있어서다. 학생이 1000원을 내면 정부 1000원을 보태고 나머지는 학교가 부담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편의점 도시락보다 양질의 음식이라 고물가에 허덕이는 대학생들 사이 인기다.



직장인 상황도 비슷하다. 외식 물가가 줄줄이 오르면서 서울 도심에서 한끼 식사를 해결하려면 최소 1만원은 써야 한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냉면 평균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7.3% 오른 1만692원이었다. 비빔밥은 8.7% 오른 1만115원, 삼계탕은 1만6115원 등으로 집계됐다.

직장인 강모씨(32)는 "구내식당 밥은 맛이 별로라 그동안 잘 안 갔는데 요즘에는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자주 찾고 예전보다 사람도 많아졌다"며 "은행 앱에서 매일 미션을 수행하면 조금씩 포인트를 주고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어 이런 '앱테크'로 돈을 쏠쏠하게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고물가 속 '짠테크' 열풍과 동시에 오마카세와 같은 고가의 외식도 인기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오마카세도 한끼에 5만원을 웃돌지만 예약이 치열하다. 최근에는 스시 오마카세뿐 아니라 닭고기, 양고기, 디저트 등 다양한 메뉴로 확대되는 추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힘드니 평소에는 아껴쓸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한번씩 '플렉스'를 하면서 일종의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며 "단순히 과소비라기 보다는 젊은 세대가 힘든 생활 속 고육지책으로 나름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고가 외식뿐 아니라 작은 명품을 한번씩 사는 등 다른 소비 문화로도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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