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쌀을 나라가 사준다고?"...그런 나라 또 있나, 찾아보니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2023.03.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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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남는 쌀은 세금으로?⑤

편집자주 일정 수준 이상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됐다. 남아도는 쌀이 더 늘어나고, 이 때문에 나랏돈이 낭비된다는 여당의 반발에도 야당은 밀어붙었다. 재정을 아끼고 시장 원리를 지키면서도 쌀 농가의 소득 안정성을 확보할 방법은 없을까.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 절차를 밟을 예정인 23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농협 수라청미곡종합처리장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시스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 절차를 밟을 예정인 23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농협 수라청미곡종합처리장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시스


농산물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숙제다. 그러나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칫 정부가 수요를 보장해준다는 신호로 전달돼 과잉 공급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실패 사례들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하 양곡관리법)을 두고 관련 기관과 학계 등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양곡관리법은 수요 대비 쌀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수확기 쌀값이 전년 동기 대비 5~8% 하락하면 정부가 남는 쌀을 매입토록하는 내용이 골자다.



태국, 2011년 의무매입제 시행…이듬해 쌀 생산량 23%↑
전문가들은 현재 양곡관리법과 유사한 방식의 쌀값 유지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외국에서 있었던 유사 정책이 대부분 실패로 귀결된 때문이다.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2011년 태국 정부가 시행한 의무 수매 정책이 거론된다. 당시 잉락 친나왓 내각은 시중 가격의 150% 가격으로 쌀을 수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지정된 창고에 입고된 후 4개월간 농가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시장가격이 높다면 판매가 가능하고, 미판매 시 정부가 소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수매정책은 급격한 생산량 증가를 낳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태국의 쌀 생산량은 의무 수매 정책 시행 1년 만에 23% 증가했다. t(톤)당 쌀값도 2011년 8155바트에서 2013년 9972바트로 올랐다. 정부가 쌀을 책임지고 매입해주자 고품질이 아닌 다수확 품종 생산에 집중하는 농가들이 늘어난 것이다.

결국 태국 정부는 쌀 매입 비용으로 2012년 13조3000억원, 2013년 14조9000억원을 지출했다. 태국 재무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쌀 수매로 인한 손실은 9조5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쌀값이 상승한 탓에 수출 경쟁력 역시 하락했다. 2012년 태국의 쌀 수출 실적은 전년 대비 35% 감소한 695만톤을 기록했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23일 오후 경기도의 한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을 바라보고 있다./사진=뉴스1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23일 오후 경기도의 한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을 바라보고 있다./사진=뉴스1
유럽 '최저가 보장 정책'도 실패…옆나라 일본은?
유럽에서는 1962년 '유럽공동농업정책'(CAP)를 통해 농산물의 최저 가격을 보장하고, 과잉 공급된 농산물은 보조금 지급으로 해외에 수출했다. 하지만 이는 과잉 생산과 가격 하락, 농가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1970년대 이후 CAP 정책 시행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매년 2% 증가했다. 평균 농산물 수요 증가율인 0.5~1%를 초과하면서 잉여농산물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밀 생산량은 수요의 30%를 초과했다. 버터와 쇠고기의 초과 생산량도 각각 34%, 10% 수준을 기록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CAP는 일부 대규모 농가에만 이익을 주고 유럽 농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농가의 소득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재정 부담만 초래했다"고 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어떨까.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곡관리법과 같은 형식의) 의무매입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1960~70년대에 일부 농가를 상대로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 과잉 물량을 매입한 사례가 있다"면서 "과잉은 해소되지 않고 막대한 재고 관리비용이 소모됐다. 많게는 한 해 소비량의 60% 이상이 재고로 쌓였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에는 일본 쌀 시장 상황이 많이 호전됐다"며 "(양곡관리법 같은) 시장격리는 일본은 시행하고 있지 않고, 타작물 전환을 위한 정책들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쌀 시장 내에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농가들이 다른 작물로 생산을 전환하도록 유도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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