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담배광고 20만원에 목숨 걸게 방치 말라

머니투데이 김진형 산업2부장 2023.03.1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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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편의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2년이다. 불혹을 넘긴 편의점은 이제 더이상 생필품이 급하게 필요할 때만 찾는 곳이 아니다. 각종 신선식품까지 파는 슈퍼마켓이고 비상약을 파는 약국이며 간편식이나 커피를 마시는 음식점이고 카페다. 일상생활의 플랫폼이기도 하다. 택배는 이제 거의 모든 편의점이 취급하고 있고 세탁물을 맡기고 찾는 곳, 중고 물품 거래 중개, 카쉐어링, 타이어 렌탈, 전기차 충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골목 곳곳에, 24시간 환하게 불을 켠 편의점은 지역 안전의 거점 역할도 한다. 데이트 폭력과 성범죄로부터 여성의 안전을 지키고 길잃은 아이를 찾아서 보호한다. 재해가 발생하면 근처의 편의점에서 긴급 구호품을 지원하고 이태원 참사 이후엔 자동심장충격기를 배치하는 편의점도 늘고 있다.



편의점이 '미니파출소' 역할까지 하지만 정작 편의점 근무자들은 안전하지 않다. 심야에 혼자 근무하는 점주나 아르바이트생이 범죄에 노출돼 있었던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은 요즘 더 불안함을 호소한다.

작년 7월부터 시작된 담배 광고 규제 때문이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 4는 '영업소 외부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지 않을 경우에만 실내 담배광고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청소년 흡연 방지를 위해 2011년 만들어진 규제다. 위반하면 징역형(1년 이하)까지 가능한 '무거운' 범죄다.



하지만 그동안은 유명무실했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 서울시 초중고 200개교의 교육환경보호구역에 위치한 담배소매점을 조사한 결과, 담배광고가 외부에서 보이는 경우가 72%였고 그중 편의점이 93%로 가장 높았다. 그동안 단속이 없었기에 규제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점주가 절반에 달했다.

죽어있던 규제는 감사원이 살려냈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에게 "왜 단속하지 않느냐"고 지적했고 복지부는 2022년 7월부터 단속하겠다고 선언했다. 편의점들은 부랴부랴 외부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도록 유리창을 불투명 시트지로 도배했다.

외부에서 위험이 처한 사람들이 편의점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하 듯 안에서 위험에 처한 직원은 외부에서 누군가 도움을 줘야 한다. 편의점 범죄는 매년 증가해 왔지만 이제 외부에서 보이지도 않으니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8일 인천에서 30대 남성이 편의점 업주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은 불안을 증폭시켰다.


누군가는 담배광고 안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담배광고로 편의점 주인이 얻는 수익은 한달에 20만~30만원 정도다. 점주 본인 인건비 정도 건지는 편의점이 수두룩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돈이 적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규제가 타당한지부터 따지는게 먼저다. 청소년 흡연을 막아야 한다는 명제는 절대선이지만 그 방법이 효과는 불분명하고 지킬 수도 없는 엉뚱한 규제라면 다른 얘기가 된다.

WHO(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은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담배를 영업소 내에 진열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5년 이 협약을 비준했다. 현재 70개국은 담배제품을 보이지 않게 진열토록 규제하고 있고 그보다 더 많은 나라들이 영업점내 담배광고를 원천 금지하고 있다.

우리 국회에는 이 협약의 취지에 맞춰 담배 진열과 노출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부터 학교 주변 영업점만 금지하는 법안, 의도적으로 외부에 보이도록 광고하는 행위만을 규제하는 법안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2020년에 제출된 이 법안들은 3년 가까이 잠자고 있다. 법안들이 국회에서 잠자는 사이 청소년 흡연율은 올라가고 편의점 점주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되든지, 범죄에 노출될 위험에 떨고 있다. 이제 결론을 낼 때 된 것 아닌가. 담배 진열이나 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불투명 시트지를 떼어내든지, 지금처럼 진열과 광고를 허용하겠다면 지킬 수 있는 규제를 하자. 20만원에 목숨 걸도록 방치하지 말고.

김진형 산업2부장 /사진=인트라넷김진형 산업2부장 /사진=인트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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